가정은 행복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엄마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남편들은 아내가 독박 육아라는 말을 하면
제일 싫어한다잖아요. 너만 고생하냐고 하면서요."
대화를 나누는 한 엄마의 어린 자녀는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그 아이 곁에는 엄마만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걸까?
회사에 묶여 있는 아빠들의 상황도 그리 녹록지 않은 듯하다.
지난해 40, 50대 남자들의 비자발적 퇴직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2020년 2월 17일 자 기사)
남자들은 비자발적 퇴직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몸과 정신을 회사에
"갈아 넣어야 하는" 걸까?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남성상은,
가정이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직장에서 남자들은
성과를 내고, 존재를 인정받아
생존하는 방법을 훈련받았다.
남자들은 야망과 야심을 에너지 삼아
성과와 승진을 이루는 것이
"남자다움"이라고 내면화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가정이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남편, 아버지상은 자연스레 '남자다움'이란
정의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 참고)
남편들이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전의를 불태우며
고군분투하는 동안 가정에는 아내와 아이들만 남았다.
마치 1.2차 세계대전 중, 마을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여자와 아이들처럼.
이제 가정은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미국 전 오바마 정부의 건축자문위원이었고,
미국의 성공 신화로 유명한 기업, 팀 하스의 하형록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 적이 있었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며,
"우리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훈을 가지고
사회 공헌을 위한 일까지 감당하는 그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그렇게 분주한 스케줄 속에서
자녀를 어떻게 돌봤는지가 궁금했다.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들었기에)
그의 답은 명쾌했다.
그리고 솔직했다.
"사실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저를 필요로 할 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곁에 있어주려고 했습니다. "
그는 기업가로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인정받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자신은 기업가만이 아닌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임을.
남편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우리 집 사정도 세계대전 당시와 다를 바 없다.
엄마와 아이들만 집을 지키는 시간이 많다.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아이들끼리 집을 지키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나마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다행이지.)
남편이 집에 와서도 얼굴에 회사 일이 가득하면
산책을 데리고 나간다.
(반려견도 아니고 데리고 나간다는 표현이...)
남편의 손을 잡고 나간다.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남편의 빡빡했던 얼굴 표정이 풀어지면 건네는 말이 있다.
"당신은 우리 집의 돈 버는 기계가 아니야.
내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지."
애정표현이자, 위로이며, 경고까지 담은
복합적인 표현이라고나 할까.
가족이 지금 누리는 것을
계속 누리게 해 주기 위해
많은 남편들이 전쟁터 같은(아니 전쟁터가 되어버린)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아내들은 남편이 없는 가정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을 하고,
싸움터에서 돌아온 패잔병을 다시 회복시켜 전쟁터로
보내는 심정으로 남편을 챙기느라 얼마나 힘을 내고 있는지...
이렇게 삶의 어려운 부분만 보자면,
남편들도 아내들도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한편,
20대 30대 미혼에게 이런 글이
'역시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답이야.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낫겠어.'
라는 결심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결혼해서 이런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힘든데.... 행복하기도 해."
가정 안의 행복이란 게 "늘", "항상"일 수는 없지만,
결혼 전에 느끼는 행복과 다른
고생스러움 속에 담긴 또 다른 컬러의 행복이 있다.
(가정 안의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만들어진 행복이 아닌,
자신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느끼는 행복을 말하고 싶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말하다 보면 너무 길어져서 여기까지.)
그런데, 가정 안에서 배운 행복이란 게 그렇다.
갯벌에 들어가 바지락을 캐내는 것과 같다.
맨발과 손과 옷 여기저기에 진흙을 묻히고,
깨진 조개껍질 조각에 손과 발이 베이기도 하면서
바지락을 캐듯이, 수고해서 발견해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결혼 15년 차,
여전히 아내와 남편, 그리고
엄마와 아빠, 아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보다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는
마음이 자라나기 쉬운 환경이기에.
그렇다면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편이 출장 가고 없는 이 밤에,
알새우칩을 입에 물고
혼자 묻고 끄적거리며
이런 시간을 즐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