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어려운 순간에, 영화를

처칠, 그는 어떻게 선택했을까?

by 이음음


남들이 뭐라 하든,

내 눈에는 죽고 사는 문제 같아 보이는

선택의 순간이 있다.

한 발로 외줄에 서 있는 것 같은

두렵고 불안한 마음.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처칠에 대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운명을 가르는 선택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영국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 앞에 서 있었다.



독일 나치군은

더욱더 강력해졌다.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까지

나치들이 밟고 온 길에는

죽은 군인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독일 나치들은

점점 영국으로 다가왔다.

이제, 영국 차례.

선택해야 했다.


독일 나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자유와 가치를 내버리고

목숨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워

자유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리거나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영화는 선택 앞에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을 말하는 사람.

이상을 말하는 사람.

두 사람 다 두렵다.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현실의 모든 것이라 믿고,

선택하려 했던 사람.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이 현실인 것은 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려 했던 사람.


두 사람의 선택은 달랐다.


눈 앞에 닥친 현실만을 말하던 사람은,

적군과 손을 잡기로 한다.

그가 집중해서 바라본 것은,

전쟁터에 널린 죽음과 두려움이었다.

평화협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는

어떤 노예 협상이 맺어질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선택하려 했다.

죽음이 아닌 목숨을 건질 수 있기에.


이상을 바라보던 사람은

현실과는 반대편에 놓인 듯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승리"를 말했다.


"승리. 우리는 끝까지 싸워서 승리할 것이다."


유럽 강국들이 나치군에 의해

하나 둘 무너지는 상황에서,

왜 그는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


그도 두려워했다.

"망상"처럼 여겨진 그의 선택 뒤에는

치열한 질문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영국의 총리로서

어떤 선택이 은 것인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올바른 기준이 필요하다.


선택의 기준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정체성에 대한 점검에서부터

선명해진다.


영화 속 처칠은 자신이 영국의 총리임을

계속 되뇌었다.

그리고 영국의 총리로서

올바른 결정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선택 이후에 치워야 할

대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무엇을 손해보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한다면

선택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선택은 두려움이라는 안개에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끝까지 싸워 승리한다"

처칠은 현실 너머

이상과 같은 선택을 했지만,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 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두려울 때마다 중얼거리던 고전시에는

죽음이 적혀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죽음.

어쩌면 그것이 처칠에게는

승리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선택이

성공을 향한 길이 될지,

실패를 위한 길이 될지,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은 선택이라면,

선택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두려움을 끌어안고 가고 있다면,

그 선택은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선택의 기준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움이 선택을 이끌어 가지 않기를....






P.S

처칠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아닌

선택 앞에선 한 사람의 두려움과 태도를

기억해 두고 싶어 정리해 둔 글.

처칠이 생방송 마지막까지

연설문의 단어 하나하나를 고치고 또 고치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전시를 읊어주는

모습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언어 선택에 대한 민감함과

문학의 감수성이

리더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주었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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