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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Feb 16. 2020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을까?

십자가와 부활 사이

자주 강해지고 싶습니다. 울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면, 울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요?


사랑하기보다 경쟁해서 얻어야 하고, 사람보다 더 완벽히 채워주는 그 무엇을 구매해서 얻어내는 시대에 강함과 능력의 힘은 자연스레 학습됩니다. 능력으로 채워진 강함이 어느새 '선'처럼 여겨지는 세상. 강함에 대한 로망은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 마음 한쪽 구석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약한 자를 사랑하시며 돕는 예수님이란 메시지를 듣고 나서도 강한 사람을 부러워 하고, 피해자가 되느니 가해자가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의 긁힘과 막막함,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두려움과 절망이란 영혼의 기근이 찾아오면,  스스로 우물을 파게 됩니다. 계속 목마르게 될 우물을.


영혼의 구원만이 아닌, 자녀의 삶을 돌보시는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줄 그 무언가를 손으로 잡기 위해 찾고 또 찾게 됩니다.


/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어디를 바라볼 수 있을까

 
이제는 기댈 곳도, 잡을 것도 없다는 허무와 절망이 뒤섞인 마음이 되어서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빠져나갑니다. 비어버린 손. 아무런 무기도, 강함도 없는 연약한 상태는 예수님의 일하심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연약한 상태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려 있던 두 죄수는 달려오는 죽음의 고통을 그저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로 십자가의 형벌을 받던 한 사람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말을 외쳤습니다.

"예수님, 주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누가복음 23장 39,42절, 쉬운 성경)


같은 고통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처럼 벗겨지고, 매 맞고, 조롱당했던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소망을 찾지 못했습니다. 소망을 찾지 못한 절망은 비난과 분노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 상황으로 소망이 없다고 단정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나라를 바라봤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눈에 보이는 상황과 몸과 마음의 고통이 아닌 '예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소망했던 그에게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누가복음 23: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랑


그럼에도 자주 묻습니다. '나의 삶이 눈물이 흐르는 십자가 위에 있어도,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이 능력도 강함도 없어 보이는 십자가 위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나의 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십자가의 고통만을 바라본다면 나는 "그럴 수 없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절망같은 죽음의 침묵을 깨고, 다시 오신 예수님, 부활의 승리를 보여주신 예수님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십자가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승리를 만나기 전에 꼭 거쳐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이후 3일. 십자가의 슬픔과 부활의 기쁨 사이에는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약속을 보이는 것처럼 믿고 기다리던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기다림이 3일이 될지, 3주가 될지, 3년, 30년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조주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길가의 꽃이나 하늘의 새와 같은 피조물이 아닌, 예수님 그렇게 한없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값으로 사신 소중한 자녀입니다.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루시는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무엇으로도 끊어질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망을 닮은 침묵 속에서 기다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기다림 가운데는 돕는 분이 계십니다. 성령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소중했던 뜻이 이루어졌던 십자가. 그것을 알면서도 세상이 말하는 강함으로 무장해 십자가와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어려움도, 십자가도 아닌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이런 약한 마음도 끌어안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성품에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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