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과 분노로 끊어져버린 관계들. 해결이 아닌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사건들. 이런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소망 없는 마음. 삶이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이 있다.
쫓기는 꿈이라면 그냥 그 자리에 눈을 감고 쓰러져 버리면 될 텐데..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면 될 텐데... 하지만 현실은 꿈속의 악몽처럼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게임처럼 리셋을 누를 수도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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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한 삶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여기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남편의 눈빛을 날마다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했던 여인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은 얻었지만 시대가 원하던 능력의 부재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은 꼭 가져야 하는 야망에 이끌려 결국 자신을 혹사시키는 고된 노동과 속임수로 평안이 없던 삶을 살았던 남자도 있었다.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 아래에서 살았지만 부딪히고 속이고, 시기하고 다투었다. 이들의 관계도 삶도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야곱의 가족이 그랬다. 소망이 없어 보였다.
남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머무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레아. 남편의 사랑은 얻었지만 언니처럼 자식을 낳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던 라헬. 형을 속이며 복을 받으려 했지만, 삼촌 라반 밑에서 속임을 당하며 억울하고 고된 노동 가운데 살아야 했던 야곱.
이들의 지리멸렬한 삶에는 각자의 이유와 바람이 있었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을 텐데...' 아픔의 이유와 바람은 상처와 얽혀 있기도 했다. '그가 가진 것을 나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했을 텐데...' 시기 질투란 감정과 얽혀 있기도 했으며,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해.' 가져도 가져도 허기진 욕망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간절한 바람이 승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자, 이들은 서로를 단 두 분류로 나누게 되었다. 승자와 패자, 피해자와 가해자. 속이고, 흠집 내고, 깨뜨리던 이들의 전쟁 같던 삶에 어떻게 평안이 찾아올 수 있을까? 다툼과 고통을 멈출 해결 방법은 있는 걸까? 막장 드라마 같은 이들의 삶 속에 뜻밖의 이름이 등장한다. 다만, 사건 앞에 놓인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휘말려 그의 이름을 놓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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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발견한 이름
야곱을 상대로 한 아버지 라반의 사기 결혼에 이용당했던 딸, 남편에게는 아름다운 신부가 아닌 원망의 대상이 되었던 레아. 하나님은 그녀를 보고 계셨다. 남편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그녀를 하나님은 사랑하셨다. 그리고 돌보셨다. 사람이 줄 수 없는 선물로 그녀를 위로하셨다. 그 시대, 여인의 큰 능력으로 여겨지던 자녀를 선물로 주셨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창 29: 31)
첫째 아이의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레아는 하나님이 아닌 남편을 기대했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라." (창 29:32) 세 번째 아들을 낳으면서도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라."(창 29:34) 남편을 여전히 갈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야속하게도 야곱의 마음은 레아를 향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러 자녀를 갖게 되었던 레아는 넷째 아들을 낳고서야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것에서 눈을 떼고 나서야 그녀를 사랑하고 돌보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그분의 사랑을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었다. (창 29:35)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자녀를 갖지 못한 열등감에 언니 레아를 적으로 여겼던 라헬. 하나님은 그녀 또한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 30:22)
질투와 미움에 사로잡혀있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에게도 그녀는 안쓰러운 자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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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상황과 느끼는 감정이 전부가 아니었다
야곱은 또 어떠한가. 이러한 레아와 라헬을 만나기 전, 절박한 어려움 가운데 놓여있었다. 형을 속이고, 빈 손으로 고향을 떠나 노숙을 하던 도망자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다. 인생의 가장 궁핍한 순간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셨고, 초라한 현실 앞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축복을 약속하셨다.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창 28: 14)
레아와 라헬처럼 인간의 시간은 시기와 다툼으로 초라한 부끄러움으로 채워지고는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심적 여유도 없던 야곱처럼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외면하는 삶이 전부일 때도 있다.
하지만, 하늘을 만드신 하나님은 엉망진창 같은 인간의 시간 속에서도 들어와 계셨다. 하나님의 축복이 다 사라진 듯 보이는 순간에 돌보고 계시던 그의 손을 드러내셨다.
결국 약속했던 축복처럼 고향으로 떠나는 야곱의 품삯을 하나님의 멋진 방법으로 넉넉히 채워주시며 많은 자녀와 재산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창 31:7~13)
쉼 없는 사건사고 속에서 잊혀지고 사라진 것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들 가운데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눈으로 보는 상황과, 느껴지는 감정이 전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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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라는 말에 금이 가고 깨어지는 시간
놀라웠다. 욕심과 죄로 물든, 답이 없어 보이는 인생. 그 전쟁터 같은 상황을 훌쩍 넘어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가능성 없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은 쉽게 당신의 선하심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다만, 하나님이 인생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은 단 한순간뿐이었다. 자신의 문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순간.
엉망진창인 것 같은 인생에게도, 주님은 그 인생을 건지시기 위해 다가오신다. 그것을 믿는 순간부터 '절대 바뀌지 않아'라고 굳게 닫혀있던 그곳에서부터 조금씩 금이 간다.
'절대 안돼'라는 곳에 금이 가고 벌어진 그 사이로 가능성의 빛이 조금씩 비추기 시작한다. 그림자로 가득했던 마음에 빛 조각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