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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May 03. 2020

슬픔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남편이 쓰러졌다.

아내는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전처럼 살지는 못할 거야. 전처럼...'

쓰러진 후 말이 어눌해진 남편의 귀는 

예전과 같았기에 아내의 혼잣말을

듣고 있었다.


아내는 먼저 그곳에 가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전과는 다른 몸으로 다른 세계에서

남편이 부딪히게 될 한계와 좌절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어려움처럼

걷어내고 일어서기 무거운 낙심이 또 있을까?


먼길을 달려가

눈물을 참고 있는 두 사람의 눈을 보고 왔다. 

함께 기도하고 왔더라면 내가 위로를 받았을까?

그들이 위로를 받았을까? 



인생을 그리 길게 산 것은 아니지만

참 어려운 일 중 하나가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힘내." "이러면 어떨까?" 하는

그럴듯해 보이는 조언을 내뱉었던 이유는

어쩌면 상대의 어려움에 거리두기를 하려는

나의 비겁함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너와 괜찮은 나를 구분 지어 버리는 

차가운 선들.

 

아파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아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가 어둠에 있다면 함께 어두운 마음에 머물게 되고,

그가 낙심하고 있다면 함께 낙심의 자리에 있게 되며,

그가 주저앉아 버리면 그곳에 함께 주저앉게 된다.


"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말은 

"한 사람의 아픔에 함께 하겠다."는

다짐과 같은 말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 사람을 돌보고 있다.

한 사람의 아픔에 함께 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아픔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함께 아파하는 시간이

온전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간의 수고와 사랑은 늘 한계를 품고 있고,

그림자를 남긴다. 어딘가에 또 다른 슬픔을 남긴다. 


그 또한 한 사람의 아픔에 함께 했다.

그러나 그의 함께함은 우리의 모습과는 달랐다.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그가 내어놓은 것은

수많은 시간과 수고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아픔을 모두 가져가 

자신의 몸에 이고 피를 흘렸다.

십자가 위에 자신의 온 존재를 올려놓았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 5절)


한 사람을 돌보며,

한 사람의 아픔에 함께 하는 

이들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다.


한 사람을 품으며 마음에 그어져버린 

낙심과 슬픔의 시간들.

그 시간에 예수님의 사랑이 형태와 모양을 갖고

한 생명에게 전해진다.


한 사람을 돌보느라 

아파하고 울며, 쓰러지고

좌절했던 상처들.

쓰러진 남편을 돌보는

아내의 두렵고 절망적인 시간에 

예수님의 빛이 비추길...

전과는 다른 슬픔만이 아니라

다른 행복과 아름다움 또한

그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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