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래서 자신의 몸을 되는대로 써버리고는
내다 버릴 물건처럼 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아픈 시간이었기에,
그는, 그녀는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몸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었을까....
한 여인이 떠올랐다.
타인만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더럽다"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여인.
12년 동안 그녀의 몸에서는
불쑥 피가 흘러내렸다.
언제, 어디서 자궁에서 피가
흐를지 모르는 병, 혈루증.
그녀가 살던 당시의 문화에서,
그런 병을 가진 여자는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이들 앞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몸을 문제시하였다.
문제 있는 몸은,
그녀에게 문제 있는 자라는
정체성을 안겨주었다.
"더러운 것."
12년 동안 들었던 타인의 말과 시선은
그녀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진실과 상관없이 그렇게 인식되었고,
그런 인식은 진실이 아닌 것을 실제처럼 느끼게 했다.
"나는 더러워."
다른 평범한 여인들처럼,
그렇게 살 수 없었던 그녀는
마음도 다른 여인들과 같을 수 없었다.
누가 나를 가까이할까.
누가 나와 함께 해줄까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을까
부서져 버린 그녀의 몸은
깨져버린 마음을 갖게 했다.
사람의 눈을 피해 다니던 그녀는
우연히 기적에 대해 듣게 된다.
기적만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해주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찮게 여겨지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분,
멸시의 대상이 되는 과거와 현재로 인해
함께 있는 것조차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분.
무엇보다, 아픈 이들을 온기 가득한 손으로
고쳐주시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가 그분을 발견한 건,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였다.
섬처럼 홀로 사는 그녀에게 낯선 풍경.
한 아버지가 딸을 살리기 위해
그분을 급하게 집으로 모시고 가는 길이었다.
부서진 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함께 울어줄 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더럽다고 불리던 그녀의 고독한 인생과
달리, 아픈 딸에게는 울어줄 아버지가 있었다.
딸을 살리려던 아버지는 부유하고 명예를 가진 자였기에,
그의 행보는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거리의 뿌연 먼지처럼
있으나 없는 존재처럼 떠다니던
그녀가 힘을 내서 사람들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12년 동안 모멸감과 고독과 슬픔과 싸워온
그녀에게 남은 건, 생존력이었다.
'살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돼.'
그녀는 그분의 옷에 손을 가만히 대었다.
머릿속으로는 '구원'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구원이란 무슨 의미 었을까?
12년 동안 그렇게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도,
다시 희망을 거는 그녀의 믿음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가 믿음의 대상으로 여겼던 그분은,
다행히도 그런 무모한 믿음조차도 기적이 되게 하는
그런 분이셨다.
항아리에 담겨있던 물이 포도주로 변해버린,
믿음이 없다면 그 현장에 있다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사건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먼저 느꼈다.
그다음, 그분이 알아차리셨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마가복음 5장 30절)
범인을 수색하기 위함이 아닌,
그녀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녀의 몸만이 아닌
존재를 온전히 일으켜 세우기 위한 부름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회복의 순간에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떨고 있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그녀를 부르셨다.
"딸아....."
부서진 그녀의 몸처럼
외로움과 버림받음에
병들어 버린 그녀의 영혼을 치유했던 그 한 마디.
딸아....
이제, 그녀는
"더러운 여인"이 아닌
"어떤 아픔도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의 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녀의 부서진 몸은
손가락질하며 문제라 비난하는 손이 아닌,
전혀 다른 손에 의해 회복된 것이다.
세상이 다 비난한다 할지라도
그녀를 딸이라 부르는 품을 가진 분의
사랑 안에서 이전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가진 자로 회복되었다.
우리의 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흠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생기를 품고 있는
몸은 아름답다.
우리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며
누군가의 영혼에 온기를 전해주는
몸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우리를 아름답다 하시는
그분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고
함께 있다 보면 알게 된다.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
(마가복음 5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