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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Sep 06. 2020

결혼한 여자가 꿈을 꾼다는 것은

경력단절에다 아이가 둘이나 되는 여자가

몇 걸음 더 가면, 어떤 세계를 만나게 될까 @Leeeum


# 꿈1.

결혼 전,  개의 꿈이 있었다.

어디든 달려가 화면에 이야기를 담아 전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는 것.

그리고 아이들과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어

주말 영화를 보는 살가운 가족을 이루는 것.  


영상을 제작하느라 밤을 꼴딱 세고,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일하는 선배들을 보고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두 개의 꿈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이었음을.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새벽마다 교회로 달려가 참 많이 울고 나서

난 가정을 선택했다.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서도

가능한 일을 아다닌 끝에

글을 쓰고, 잡지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꿈2.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깨닫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가

꿈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남편을 비롯한 시댁, 친정 부모님의 동의와

이들의 실질적인 도움,

그리고  아기의 건강상태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를 엄마 손으로 키울 때의 비용과

누군가의 도움으로 키울 때의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두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며,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두 생명을 전심을 다해 책임진다는 것은,

버겁지만,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6년의 공백은 가졌던 꿈을

의심과 낙심과 포기로 뒤덮어 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던 질문.


"내게 무슨 꿈이 있었지?

꿈이고 뭐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나 있을까?"



#꿈3.

꿈 대신 생존을 위한 일을 찾던 시기에

기적처럼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잡지 만드는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

다시 꿈을 품고 일을 한다는 기쁨보다

"소윤이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다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감격도 잠시,

6년의 공백을 빨리 뛰어넘어 "능력 있는"

프리랜서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낮에는 어린 두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이 잠이 든 후에는 새벽까지 글을 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아침, 육아, 집안일, 시댁일, 친정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지쳐서 들어오는

남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계속되는 강행군에

체력이 떨어지는 건, 그래도 견뎌낼 수 있다.

6년의 공백으로 인한 "나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불안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공백 없이 작업을 쌓아간 이들의 경력과 실력 앞에서

쉽게 주눅이 들고는 했다.

몸과 마음 극도로 지쳐갔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결혼한 여자에게 그것도, 경력단절녀에게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번에 놓친다면 더 이상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버티는 수밖에.

다시 새벽마다 불 꺼진 교회로 달려가

울면서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도와달라고.

계속해나갈 자신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고.

이런 상황에서 구해달라고.


아슬아슬한 게 어디 인생뿐일까 @Leeeum

#꿈4.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이 된 아이들.

이제는 혼자서 할 일을 하고,

집안 일도 도와줄 만큼 자랐다.


경력단절로 인한 "능력"의 의심과 불안을

밀어낼 만큼 경력과 시간과 뻔뻔스러움이 쌓였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되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일했던 걸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 피곤하게 살았던 걸까?


꿈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하기에는,

사람들의 평가와 반응에 휘청거리며

흔들렸던 시간이 많았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던 걸까?

"소윤이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불릴 수 있는 일을 하고,

경제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걸까?


고백하건대,

런 것들이 중요한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아파와도 멈출 수 없었던,

그토록 원했던 꿈은 무엇이었?



#꿈5.

일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직업이 꿈을 성취하는 과정일 수 있지만,

직업이 꿈의 전부는 아니었다.


다시 일을 하며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과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힘들어하며,

그것을 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 속에서

깊이 숨겨두었던 나의 모습을 직면하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하며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이제는 꿈을 이루는 것보다

내 자신과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에

더 많은 마음을 쓰게 된다.


엄마와 아내가 아닌

자신의 이름 석자로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또는 그런 시간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한계에 부딪히고 힘들어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롭게 빚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꿈을 향해 걷는 자의 모습이 아닐까?


힘든 과정 속에 있지만,

결국에는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얼마나 대견한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


나를 벗어난 시선으로 다른 이들 또한

얼마나 귀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시간을 걷고 있다면,

그것 또한 꿈을 향해 서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닐까?


결국에는 어떤 꿈도

사랑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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