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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08. 2022

마음이 찢기는 시간에

초현실주의 화가 안토니오 사우라 

안토니오 사우라, <십자가책형>, 1979년


러시아군이 후퇴하며 지나간 자리. 거리에 버려진 죽은 자들에 대한 기사는 경악을 일으킵니다.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야만 했는지. 부모들에게 어린 생명의 죽음을 보도록 거리에 방치해두는 잔인함까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안토니오 사우라. 그는 이미 인간의 잔혹함을 보았습니다. 9살의 눈으로 보았던 2차 세계대전과 전쟁 이후. 유럽의 거리를 배회하던 팔과 다리가 없는 남자들. 남편과 아빠를 잃은 여성과 아이들의 얼굴을 그는 보았습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사우라는 인간의 잔혹함과 고통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외치기로 합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손을 잡고 갔던 미술관. 그곳에서 봤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떠올리며 사우라는 20세기의 십자가를 그려냅니다.




거친 붓 자국으로 그려진 십자가 위에 매달린 존재. 사우라의 십자가에는 피 흘림이나 구원이 주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통으로 뒤틀린 몸의 경련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발작을 일으키는 상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이의 얼굴과 몸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고통으로 뒤틀린 상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이는 십자가에 달린 이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는 그는 예수님일까요? 아니면 인간일까요? 


사우라의 십자가는 보는 이에게 만약이란 상상을 자극합니다. 만약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없다면, 만약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아닌 인간이 매달려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은 끝나지 않는 절규입니다. 구원자가 없는 십자가는 잔혹함과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사우라의 십자가는 예수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직시하게 합니다. 십자가 위에 매달린 듯,  마음이 찢겨 나가는 관계라면 그곳에서 예수님을 부를 수 있기를. 십자가와 같은 고통의 시간에 분노와 슬픔의 절규만이 남지 않기를.  지나고 보니 그토록 아픈 십자가의 시간이 소망으로 남은 것은, 그곳에서 한숨처럼 부른 예수님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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