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생일을 챙겨줬습니다

미국에서 미역국 만들기

by 한양희

오늘은 내 사랑 힝구(남편)의 생일입니다. 결혼 한지는 일 년이 넘었지만 힝구는 미국에, 나는 한국에 살고 있던 탓에 내가 미국으로 넘어온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생일상을 챙겨주었어요.


힝구는 늦잠을 자고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나 어제 미리 준비한 미역국을 데우고 대구(생선)와 애호박 전, 두부 전을 구웠지요. 이 미역을 사기 위해 한 시간이나 운전해서 왕복 두 시간을 들여 한인마트에 다녀왔다고 힝구에게 엄청 생색을 냈답니다. 백종원 선생님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맛있다던데, 오늘 아침에 세 번째로 국을 달였더니 국이 약간 짜졌더군요. 힝구는 맛있다고 했지만 그 말과는 달리 국을 향한 숟가락의 몸짓에는 머뭇거림이 있었지요.(ㅋㅋㅋ) 생일엔 팍팍 떠먹어야 복이 온다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내 생일에 해준 법칙(?)을 힝구에게 적용하게 됩니다. ‘생일엔 고봉밥을 먹어야 해’ 하면서 밥을 한가득 담고, ‘생일엔 미역국을 많이 먹어야 해’ 하며 미역국도 한 사발을 퍼다 주니 힝구도 먹는데 힘겨워합니다. 엄마의 전통이 딸에게 자연스레 발현되는 순간입니다.


어제는 힝구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월마트에 다녀왔습니다. 생일 분위기가 나게 데코를 해 볼 생각으로 찾아간 파티 섹션에는 생일 축하 카드가 잔뜩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 문구가 미리 찍혀 나온 카드들이 5~9달러 정도 하더군요. 자신의 마음을 담는 것 마저 상업적 상품으로 소비되는 미국의 어마어마한 카드 시장을 목격하고선 집에 돌아와 힝구에게 줄 카드를 손수 그렸습니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소중한 손 편지를 넣어서 말이죠.


나름 생일 분위기를 내려고 풍선도 사서 불었어요


엄마를 비롯해 한국에 있는 식구들은 어제부터 힝구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단체톡 방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여긴 아직 어제야’라고 알려줬지요. 엄마는 3번이나 잘못된 시간에 영상통화를 걸어왔습니다. 아직 사위는 퇴근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엄마는 힝구에게 뭘 해주고 싶다고 계속 얘기했어요. 반찬을 보내겠다 했지만 내가 힝구를 조만간 보낼 테니 걱정 말라고 얘기했어요.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싶다는 엄마. 역시 사위사랑은 장모인가 봅니다.


힝구는 소박한 생일상을 받고선 후식으로 맛동산과 커피를 먹은 후 영화를 보다 다시 낮잠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다 졸려 안 되겠다며 침대로 들어간 그는 나를 껴안으며 ‘부인죽부인’이라는 이상한 주문을 욉니다. 창문을 열어 공기는 선선하고 이불 안은 따끈한 게 낮잠 자기에 제격인 환경이죠.


나는 그의 옆에 누워 선잠을 자다 겉절이를 담는 꿈을 꾸었는데, 스르르 눈을 떠 보니 오른손으로 힝구의 머리카락 배추 삼아 치대고 있지 않겠어요? ㅋㅋ 잠이 깬 나는 곤히 자는 힝구를 옆에다 두고 이따 오후에는 떡볶이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따금씩 깨는 힝구는 ‘심심하지?’ 물어보고 다시 잡니다. 힝구는 참 잠이 많아요. 힝구덕에 부지런을 몸에 달고 살던 나도 한껏 게을러져 침대에 뒹굴 거립니다. 뒹굴뎅굴하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게으르게 행복해지니 바쁜 삶을 사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엄마도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는데 엄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어떨 땐 내 삶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엄마 덕분에 풍족하고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고 미안한 나의 엄마. 우리의 엄마들은 늘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자 애를 쓰지요. 아마 나도 엄마가 되면 그렇게 하겠지요?


이따 저녁엔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야겠어요. 힝구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머님 덕분에 힝구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다고 전해드려야지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세요 어머님. 한국 가면 맛있는걸 잔뜩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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