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녀를 싫어하기로 했다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글쓰기는 어렵다. 글을 쓰면서 시어머니를 싫어하는 마음이 사그라들거라 생각했지만 글쓰기만으로 마음을 수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글쓰기를 명상의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하던데, 나에게는 먹히지 않나 보다.
시어머니를 글감으로 삼아 매주 2차례 씩 10포인트 크기의 글자로 A4용지 3페이지의 분량을 써내려 간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점점 지쳐간다. 시어머니가 왜 그런지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나는 그녀를 더 모르겠다. 그녀가 밉다는 감정도 없다. 그저 싫다. 미움은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나 애정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감정이기에 나에겐 시어머니가 미운대상이 아니라 싫은 사람이다. 애당초 그녀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었나 보다. 그 덕분에 나는 그녀에 대한 실망감도 없다.
집을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나와 남편은 2,300불, 한화로 30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며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원 베드 아파트에 지내게 되었고, 두 번째 월세를 내 고난 바로 다음날 일주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나의 지난 사정을 들어 걱정하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우리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고향 땅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한국에 머물며 가족들 품에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알았고, 이 사랑을 남편도 가득 품은 채 미국에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랜만에 사위 얼굴을 본 아빠는 딸과 사위를 기다리던 장인어른의 마음을 이제 알겠다며 감춰왔던 속내를 외할아버지의 마음에 빗대어 표현했다. 지난 주말, 엄마, 아빠와 세 딸, 세 명의 사위와 예비사위가 이루는 대 가족이 모두 모여 공주 공산성 성벽을 걸었다. 따사로운 날씨 덕분에 마음이 따끈했다. 각자의 짝꿍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행복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행복이란 별거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햇살 아래를 거니는 것. 어렵지 않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오늘, 어느덧 한국에 온 지 5일이 지났고,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우리가 한국에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시어머니는 한국에 도착한 그날, 카톡으로 남편에게 장문의 욕설을 보내왔다. 자신이 찾지 못하는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왜 버렸는지에 대해 다시 묻는 내용이었다. 당신이 처음 보셨을 때, 그리 좋다고 하던 새 소파가 얼마나 허접한 쓰레기인지, 자신이 주어온 바퀴 달린 100년 된 병원 침대는 왜 버렸는지, 야외에 내놓은 세탁기는 왜 세탁실로 넣어놨으며, 드라이어는 왜 사서 연결해 놨는지, 음식물 분쇄기는 왜 달았는지, 식기세척기는 왜 샀는지, 모든 것을 탓하는 어머님의 원망이 음성으로 들려오듯 문자로 쏟아졌다. 두 번째로 온 카톡에는 며느리인 내 욕도 담겨있었다. 읽기가 싫어 화면을 꺼버렸다. 타인의 나에게 내뱉는 거친 말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면 그 욕은 나에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인스타 그램의 자기계발 릴스가 잠시 떠올랐지만 나는 성인군자가 아닌 보통의 사람이었기에 욕을 읽자마자 마음이 상했다.
“그럼 그렇지.”
시어머니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바닥이었던지, 마음이 상한 나는 그녀에 대한 맞대응 보다 기대에 충족하는 그녀의 행동에 대한 나의 예측정확성에 감탄하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어머님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야.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느라 많이 지치고 힘들었겠지. 못 배우고, 못 먹고, 맞고 산 사람이니 우리처럼 생각할 수 없을 거야. 환자를 대하듯 돌보는 마음을 가져야 해.’
마음속으로 되뇐 생각들은 시어머니가 보낸 욕설 카톡과 함께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동생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지난 시간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인생의 전개에 그들이 걱정할까 염려하기도 했고, 어찌 보면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시시콜콜한 가족 문제를 떠벌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지리적 거리는 통신이 이렇게 발전한 이 시기에도 심정적으로 일상의 공유를 어렵게 하는 묘한 요소였다. 마음에만 담고 있기엔 응어리가 될 시어머니에 대한 답답한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글쓰기를 택했다.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겪을 일들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고, 그녀에 대한 이해도 깊어 질거라 생각했다.
허공에다 외치는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글을 쓴 덕분에 그동안 답답했던 감정은 바람결에 실려 나가듯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어머님에 대한 이해와 그녀에 대한 나의 태도가 늘 같은 선상에 있지만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그녀를 다시 바라보겠다 마음먹는 시점마다 날아오는 시어머니의 욕설 카톡은 잔잔한 마음에 바위를 던져 넣은 듯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한국 방문을 시작하는 시점에 다시 만난 시어머니의 욕설 카톡에 나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시어머니가 나와 남편에게 한 만행을 동생들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비이성적인 그녀의 행동으로 내가 겪은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시어머니 때문에 고생하는 며느리로 나를 묘사했다. 사실 고생한 거라곤 4개월간의 집수리로 인한 육체적 고생과 추가로 지출되는 월세로 인한 마음고생이 다지만,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나는 고생을 옴팡지게 한 며느리가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는데. 사람은 말하는 대로 보이게 된다고 믿고 있는 내가, 나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아 조금은 후회가 된다. 글과 말을 쏟아내며 갈팡질팡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다.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은 정신건강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달이 나기 전까지 나는 2주에 한번 정도 시어머니께 전화를 하며 어떻게 지내시는지, 몸 아픈 데는 없는지, 필요한 건 없으신지 여쭤보았고 당신이 찾기 힘든 정보들을 찾아 전달해 드렸다. 허리가 아프시다는 말에 마사지를 예약하고, 추운 날씨를 견딜 난로를 사 배송시켜 드리고, 본인조차 생신을 챙기기 위해 몰래 천안에 홀로가 케이크 촛불을 불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종합건강검진을 직접 모시고 가 해드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나는 당연히 했고, 기꺼이 했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엄마니깐. 불과 3개월 전인 그 일들이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에 대한 감정은 차갑게 식어 있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나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것 마냥 그녀에게 큰마음을 내어 주지 않았다. 이전에 시어머니를 위한 모든 일들은 남편을 위한 일이었지 그녀를 위한 일은 아니었었나 보다. 그래서 그녀를 싫어하는 현재의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이제 어느 정도 그녀를 마음속에서 떼어내어 잊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머님은 왜 햇살아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쉬운 행복을 찾지 못하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