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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Mar 21. 2024

주말에만 열리는 그레이트 하이웨이

산책은 나의 힘

날씨가 좋은 날엔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걷는다. 집세, 기름값, 식료품 등 모든 것이 비쌈에도 사람들이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이유 중 하나로 나는 날씨를 꼽는다. 그냥 날씨가 너무 좋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쉽게 좌우되는 나는 따뜻한 햇볕과 상쾌한 공기만으로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따사로운 캘리포니아의 햇볕은 이곳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진다. 누구 하나 거르지 않고 밖에만 있으면 평등하게. 햇볕은 아득히 먼 곳, 우주가 보내온 선물이다.


생각 없이 긴 길을 걷고 싶은 주말에는 그레이트 하이웨이를 찾는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반도의 서쪽 편 해안도로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차량을 통제해서 사람들이 산책하는 보도로 바뀐다. 주말 동안만 운영되는 차 없는 거리인 셈이다.

차가 다니던 길을 사람들이 차지하면서 이곳은 다양한 볼거리로 넘쳐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롤러스케이트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마다의 특이한 탈것들을 탄 사람들이 거리를 누빈다. 개성이 넘치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들.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 모두가 햇살 아래서 저마다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그레이트 하이웨이는 바다를 끼고 있어 서퍼들도 많다. 파도를 탄다는 건 꽤나 낭만적인 일이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을 거스르지도, 그렇다고 순응하지도 않는 자세를 취한다. 잔잔한 바다로 나아가 자신에게 맞는 파도가 오길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때다 싶을 때 보드의 앞머리를 돌려 냉큼 파도에 올라탄다. 어느샌가 파도와 하나가 되는 듯한 물아일체의 모습을 서핑하는 이들을 보며 대신 느낀다. 나도 얼른 바다에 뛰어들어가고 싶은 기분이다.


불행히도 서핑을 해본 적 없는 나는 서퍼들을 동경하는 눈빛들을 거두고 해안가를 산책한다. 산책도 서핑 못지않게 낭만적이다. 다른 동력 없이 오로지 나의 다리 힘으로 지면을 디디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가장 쉽고 즐거운 방법이다. 평화로운 해안의 바람과 내리쬐는 태양으로부터 조금은 피부를 보호하고 싶다면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지만  피부 관리는 한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인지 맨눈과 맨살로 태양과 바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모습으로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정말 획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레이트 하이웨이를 왕복하고 나면 나는 해변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주변 소음이 차단되는 이어폰을 끼고 잠시동안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다 문득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하러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과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이 눈앞을 덮친다. 챙겨 온 물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목을 축이고 또 한 번 햇살에 잠긴다.


‘아… 이보다 행복할 수는 없다.’



3월 말. 한국도 곧 다가올 봄을 맞을 준비로 많은 이들의 마음이 들떠 있을 것 같다. 봄을 사랑하는 나는 추웠던 겨울의 단단한 땅을 깨고 나오는 예쁜 새싹들과 노오란 풀꽃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었다.  긴긴 겨울 동안 예쁘게 피어나는 꽃들을 기다리며 처음 따뜻한 공기를 맞이했을 때는 그 생경함이, 그 찰나가 봄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겨울이 없는 이곳에서도, 3월이 되자 만연한 봄기운은 온 대기를 감싸고, 나는 이곳에서도 긴긴 봄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겨울이 없어도 봄은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다.


산책하기 너무 좋은 아름다운 그레이트 하이웨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찍 맞이한 봄의 소식을 한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께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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