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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Oct 27. 2020

나도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텐데

아들을 향한 짝사랑은 일찍이 그만두자 

지난 며칠간 손가락에 글신이 들린 듯 신나게 시월드 에피소드를 풀고 나서 사이다 한잔을 쭈욱 들이킨 듯 마음 한 켠이 후련했다. 마음속 꾸깃꾸깃 담아두었던 꽁한 마음이 마치 다림질 끝낸 빠뜻한 와이셔츠처럼 차곡차곡 옷장에 이제 넣어두고 몇 년간은 안 봐도 될 거 같다.

그래도 찜찜한 이 기분이 남는 건 왜일까?

 



나에게는 오빠 한 명이 있다. 

우리 엄마의 진정한 사랑은 우리 오빠였다. 긴 세월을 함께한 아빠도 아니요, 엄마 옆에서 알랑방귀 끼며 엄마 말을 잘 들어주는 나도 아니다. 물론 엄마가 나에게 쏟은 정성 또한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난 잘 안다. 

엄마가 오빠에게 얼마나 사랑을 쏟았는지 말이다.

 

서울로 대학 간 오빠가 가끔 부산에 내려올라치면 엄마는 갈비 한 세트씩을 짝으로 주문했다. 기름이 잘잘 도는 갈비는 그냥 봐도 딱 비싼 놈이었다.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하얀 스티로폼 상자를 보면 '아. 오빠가 올 때가 됐나 보네.' 가늠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오빠가 부산에 있는 동안 매일 재료가 다르게, 갓 한 따끈한 밥으로 상에 올려 정성스레 오빠에게 내어주었다. 그렇게 신나게 엄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일 불 앞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냥 나는 좋았다. 들뜬 엄마는 열심히 요리를 했고 뭔가 집이 꽉 찬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빠가 가고 나면 엄마는 또 허탈해했다.


독일에서 살 때,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둘러둘러 부산에 도착하니 엄마가 앉은자리에서 자갈치에서 장을 봐왔다며 노릇하고 두툼한 갈치를 구워낸다. 생선을 구경하기 힘든 독일에서 온 나는 갈치 두 토막을 금방 먹어치운다. 참으로 내가 사랑하는 생선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갈치다. 막 허기진 듯이 또 한 그릇을 비운다. 

그다음 날은 갈치조림이 올라온다. 

우리 엄마가 자갈치 시장에 있는 갈치를 다 싹쓸이를 했나 보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주메인은 갈치다. 뭐 나야 아무거나 잘 먹고 김치 하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이기 때문에 그런 건 별로 개의치 않긴 한데.


엄마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좀 늦게 올 거 같그든.
오늘은 알아서 좀 챙기무라.


독일에서 날아온 딸내미 약발은 어째 3일이면 끝나는가 보다. 



서울로 대학을 간 오빠를 보내고 엄마는 참 많이 힘들어했다. 곁에서 든든하게 엄마 옆을 지켜주던 오빠가 떠나니 옆구리가 휑한 모양이다. 그 시린 옆구리는 딸내미로는 잘 안 막아지는 가보다.

아빠의 사업이 힘들어지고 집 이사를 몇 번이고 할 때도 그것은 오롯이 우리만 아는 비밀이고 멀리서 공부하는 오빠에게 방해되지 않게 늘 쉬쉬하며 전화를 받던 엄마다.

응. 아들아 잘 있제?
우리야 뭐 잘 지내지. 걱정마라.
우리는 세명인데 니는 거기서 니 혼자 아이가.


오빠를 지켜보는 엄마만의 표정이 있다. 

10개월 아기를 배속에 배고 있다가 낳아서 애지중지 기르고 손을 잡고 첫 학교를 가고 그리고 대학을 보내고. 지금은 본인 키보다 훨씬 커버린 장성한 아들을 바라보며 엄마는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말이 많이 없는 아들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이리저리 얼굴을 살피는 그 표정이 보고 있으면 참으로 오묘하다. 





나는 두 아들을 둔 엄마다. 

지금 내 품속에서 까르르 웃는 아들을 바라보면 가끔 우리 엄마가 오빠를 바라봤던 그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나도 우리 엄마 DNA라 두 아들을 온 힘을 다해 키우긴 할 텐데 그렇게 애달파하며 평생을 짝사랑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 온 정성으로 온 마음을 다해 온기력을 다해 키우고 나서 자기 짝을 찾아 떠나면 뭔가 가슴팍이 먹먹할 거 같다. 


우리 시어머니도 내게 그런 아들을 주셨을 때 그땐 몰랐다. 결혼식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님을 보고 '궁상맞게 왜 저러실까' 생각했는데 내가 내 새끼를 낳아보니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제 짝을 만나 자기 삶을 살고 훨훨 날아가는 것을 보면 홀가분보다는 아련함이 더 남겠지. 

그리고 나 같은 무뚝뚝한 며느리가 들어와서 시댁을 너무 자주 가네 마네 하면 시엄마로서 피가 거꾸로 솟긴 하겠지. '발칙한 것이 어디서!' 눈을 힐끔거리면서 며느리를 또 쏘아보겠지. 내 아들에게 나와 며느리 사이를 시험하는 그런 무서운 숙제를 줘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남편에게 그러하듯이. 

'나야 아님 어머니야?' 

애초에 그런 아들을 향한 무한한 짝사랑은 나를 위해서도 미래의 며느리를 위해서도 거두는 게 맞는 거 같다. 



배속에 있는 아기가 아들이란 걸 안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 내게 20년 아이를 맡긴 것이라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열심히 둘을 키우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 하도록 도와주고 그리고 언젠가 짝을 만나면 서로 알콩달콩 사는지 멀리서 묵묵히 지켜볼 거다. 그리고 열렬한 사랑은 우리 서방님과 해야지. 그리고 같이 흰머리 뽐내며 늙어가야지. 

이번 생은 왠지 그냥 봉사하는 삶이라 생각해야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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