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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Oct 24. 2020

애는 나 혼자만 키우니?

프랑스 시월드 이야기 3

친정이 멀다는 게 가끔 이리 서러울 수 있을까??

누가 그런다.

프랑스로 시집간 것은 니 결정이라고.

맞다. 내가 결정했다.

가까운 친정, 한국 다 놔두고 프랑스로 멀리 시집을 온 것은 내 결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짐을 나 혼자 짊어져라 하기에는 때론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또 누군가가 그런다.

니 아이 키우면서 뭐 별일이나 되는 것처럼 그러지 말라고

맞다. 그것도 우리 남편이 그런 소릴 내게 했다.

우리 아이 키우면서 왜 자꾸 (자기네) 부모님 갖다가 들이대냐고.


난 비단 독박 육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홀로 키웠다.

우는 아기 업고 버스 타고 걸어 걸어 병원이며 경시청 다 혼자 다녔다.  

그리고 그게 대단하다고 자랑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남편 말 맞다나 난 책임을 다해서 그냥 내 아이를 키웠을 뿐이다.




내가 시부모님께 SOS를 친 일은 첫째를 홀로 키우는 14개월 동안 단 2번이었다.


2017년 12월 7개월 된 첫째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한국을 갔다. 우리 부모님께 첫 손자도 보여드릴 겸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자 한국을 갔다. 추운 겨울 그리고 다소 타이트했던 여행 일정으로 여행 막바지에 남편이 심한 감기가 걸렸고 출국을 이틀 앞둔 날 저녁, 아기가 열이 40도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먹지 않고 사정없이 울어만 대는 아기를 데리고 응급실을 갔다. 옷을 벗기고 열을 내리고 점차 상황이 좋아지기는 커녕 아기는 계속 울어댄다. 병원에 도착한 지 5시간 남짓, 갖가지 검사를 하긴 하는데 의사 말이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며 또 다른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내일 출국은 아기에게 무리이므로 출국 일자를 변경하라 했다. 남편은 한국말을 몰라 어영부영하고 있고 응급실 아프다고 실려온 여러 환자들 사이에서 나는 실로 혼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검사하고 있는 거 다 빼주세요.
비행기 안에서 아기가 아파 자지러지더라도
엄마인 제가 책임집니다.



여자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한참을 바라보더니 검사를 중단했다.  


아들이 프랑스 여권이라 의료 보험 적용이 안되어 검사란 검사만 해대고 20만 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출국일 - 비행기를 타는 12시간 내내 나는 아픈 남편 간호며 열이 올라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달래느라 마음만은 살얼음을 걷는 듯했다. 드디어 샤르드골 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찾자마자 내가 몸이 으슬으슬 아픈 것을 느꼈다. 도착해서 겨우 이제 살았다 싶었는지, 긴장이 풀렸던지 간에 평소 잔병치례 안 하는 내가 일주일을 골골 앓아누웠다.

도착 이틀 후 출근하는 남편에게 도저히 아기를 혼자 돌볼 수가 없겠으니 며칠만 어머니를 부르자고 했다.

남편은 어머님이 일을 하시기 때문에 당장에 급하게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저녁에는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공수표만 던지고 출근을 해버렸다.

남편이 전달을 했는지 어쨌는지, 남편이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잘못하는 건지 아님 시어머님이 내게 엿을 먹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기는 시차 적응이 안되어 밤새도록 깨는 통에 아픈 와중에도 아기 보랴 내 몸뚱이 돌보랴 여념이 없었고 전쟁 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놈의 마음속 씁쓸함이 계속 남아있었다.




그렇게 일 년 넘도록 내가 아들을 홀로 키우다가 어느 날 마침 헤드헌터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업에 아주 좋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어떻게.. 면접 가능하신가요??

  근데 그게 면접 보시는 분이 모레만 시간이 가능하다시네요. 오전 11시로요."


아하...

그 주는 남편은 모로코로 일주일 출장이 있어 떠나 있었고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면접 시간을 조정해주세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아기 엄마라 그런 약점이 책잡히는 게 두려웠다. 어떻게든 2시간 아기를 맡아 줄 수 있는 곳을 알아봐야 했다. 모로코 출장 중인 남편에게 시어머니나 시아버님이 (시부모님께서는 두 분이 이혼하신 상태) 2시간만 여기로 아들을 맡아주실 수 없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께 저녁에 내게 답장이 왔다.

'그 날은 내가 일을 해야 돼서 미안하지만 불가능할 거 같다.'

단 2시간인데, 어머니가 급하게라도 그냥 월차를 쓰시면 안 되나 아니면 어떻게라도 병가라도 내시면 안 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며느리 일 하라고 눈치 주실 때는 언제고 막상 일 하겠다니 이러시긴가 싶었다. 아이는 내 아이이기도 하지만 본인 손자이기도 하지 않나.


핸드폰 목록을 한참 뒤지다가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나 부탁이 있어.
모레 면접이 있는데 2시간만 우리 아들 좀 봐주면 안 될까?




면접날,

아들은 곤히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 6시부터 비가 주룩주룩 온다.

언니 집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50분 남짓은 가야 하는데 뭔가 징조가 안 좋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안될 거 같아. 나 그 회사랑 인연이 아닌가 봐. 평생 집에서 애나 볼까봐.' 


그 몇 푼을 벌거라고 새벽부터 정장으로 차려입고 아기를 맡기고 가야 한다는 게 하염없이 내리는 비처럼 나를 우울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상황에서 나는 혼자라는 게 가슴 뻥 뚫린 비참함으로 다가왔다.


'아냐 택시 타고 가. 택시비 내가 줄 테니. 너 그렇게 안 가고 나서, 나 너한테 평생 안 좋은 소리 들어야 해.

 후회 안 하게 다녀와.' 


유모차, 아기 가방, 화장품 도구며 면접 구두를 따로 바리바리 챙기고 택시를 탔다.

이게 맞나 아닌가 - 방금 잠에 깬 아들은 이상한 상황에 멀뚱멀뚱 내 얼굴만 쳐다본다.


그리고 그날 오전 면접을 어찌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면접이 끝나고 속이 후련했다.

'결과야 어떻든지 간에 내가 할 일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메트로 안에서 헤드헌터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주었다.


7월 1일 부로 출근하시라네요.
축하드립니다.


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합격의 결과와 함께 소정의 돈을 뽑아 언니에게 내밀었다. 언니는 있는 동안 기저귀 간 거밖에 없다며 돈을 극구 사양했다.

언니에게 늘 고맙다. 그 고마움은 아마 평생 갈 것이다.

비단 나의 취직이란 걸 떠나 내가 엄청 급박할 때, 시댁 가족이란 것들도 도와주지 않는 이 와중에 언니가 나의 옆을 지켜주었다는 것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를 살려주었단 것이 고마웠다.



그 이후로 나는 시댁에 어떠한 부탁도 하지 않는다.

내가 내 마음에서 시댁을 쓰리 아웃시키게 될까봐 더 이상 부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의 쓰라린 마음만은, 가슴속 작은 멍울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아주 씁쓸하게.



*배경 그림 : 영화 주노 <Juno>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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