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겐 너무 잦은 시댁 투어s

프랑스 시월드 이야기 4

by 마담 조셉

효자 아들인 서방님을 탓해야 하나.

'언제쯤 오니?' 은근슬쩍 문자 보내시는 시부모님을 탓해야 하나.

고생스럽게 시댁이란 곳을 그냥 가기 싫은 내 변덕스러운 마음을 탓해야 되나.


우린 시댁 투어가 너무 잦다.

(사실은 시댁투어s 가 되겠다 : 시부모님 두 분이 이혼하신 상태라 두 집을 다 돌아야 되는 상황)

각각 부모님 생신 + 부활절 + 크리스마스 + 기타 등등 거의 두 달에 한 번씩은 어디를 움직이는 거 같다.


남편과 연애시절, 남편은 1달에 두 번 그러니까 2주에 한 번씩은 시골을 내려간다며 내게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이 총각이 사뭇 효자 냄새가 폴폴 나는 사람임을 그때 감지했어야 됐는데.




결혼 초기에는 시댁에 따라가는 게 참으로 싫었다.

차라리 가기로 약속된 날에 위장병이 났으면 했다.

프랑스어가 더 안될 때라 시댁에 가면 들판에 꽂아놓은 포대자루 마냥 존재감도 없고 듣는 귀도 없이 그저 웃는 시늉으로만 3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다 함께 있는 저녁식사 자리에 단 하나뿐인 통역인 남편이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오줌 마려운 강아지 마냥 나는 의자에 앉아 어쩔 줄 몰라했다. 그 3분이 내겐 너무 길었다.

나중에 프랑스어가 이해가 좀 되기 시작하고서 식탁 위 오가는 대화가 시시콜콜한 별다른 이야기가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허탈함은...


아기가 낳고 나서는 '아기를 보여드린다'는 이유로 자주 소환되었다.

그놈의 짐은 왜 징그럽게 많은지. 또 그 짐을 챙기는 담당은 항상 나다.

여벌 옷, 아기 샴푸, 기저귀, 턱받이, 각종 크림, 등등. 2박 3일을 가는데 한국 가는 큰 케리어 짐처럼 그냥 한 보따리이다.


예전, 시부모님 두 분이 헤어지고 나서 그래도 같은 동네에 사실 때는 그나마 한번 가면 그다음 소환일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벌렸다. 한 번 갈 때 하루는 어머님 댁, 남은 하루는 아버님 댁 이렇게 중간에 짐을 풀었다 다시 싸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도 그나마 어느 정도는 할만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다른 동네로 이사하시고 나서는 한번 움직이면 한 곳에 더 오래 머물긴 해도 시부모님이 서로 자식들이 언제 다녀갔는지를 더 견제하시는 거 같았다.


그 많은 짐을 트렁크에 욱여넣고 두 아이를 태우고 2시간여 되는 길을 차를 타고 간다. 대부분 낮잠 시간에 맞춰 가긴 해도 점점 낮잠이 없는 첫째와는 차 안에서 온종일 떠들며 같이 놀아줘야 된다. 그렇게 주말을 불태우고 나면 다시 그 담주는 시어머니 댁에 가야 하는 뭐 그런 식이다.

낯가림을 시작한 둘째는 집이 아닌 다른 데서 자는 상황이 낯설어 도착 첫날은 거의 안아재우다 시피 해야 되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서방님은 눈치가 없는 건지 부모님과 시시콜콜한 얘기로 육아가 더 뒷전인 것만 같다.



작년 시아버님과 막내 시동생 내외 이렇게 다 함께 한국에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한국을 가기 한 달 전 즈음 시아버님 댁 방문 예정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그렇게 먼 여행은 처음이어서 다소 긴장도 되고 걱정이 슬슬 되시는 모양이다.

내가 둘째 임신을 하고 한창 입덧을 할 때라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리고는 월요일부터 시작된 몸살기가 금요일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은 아버님께 못 갈 거 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시아버님에게 답문이 오기를,

'그럼 나도 그러면 한국 안 가련다.'


이 무슨 7살 소꿉장난 같은 말인가.

몸이 아파 못 가겠다는 며느리를 두고 지금 이걸 협박이라고 하시는 겐가 싶었다.


그리고는 찝찝한 문자를 받은 그다음 날, 토요일 아침 - 서운해하시는 아버님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남편이 내게 말하는 게 더 가관이다.

"너 그 이기심 때문에 너 지금 3명을 마음 아프게 한 거 알아? 몰라?

아빠, 나 그리고 우리 아들.. 너 아들한테도 그렇게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 집 가자 가자 약속만 잔뜩 하더니 막판에 정말 이러기냐?"

저게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인다 싶었다.

이렇게 골골대는 나를 휘휘 저어서 어쩌고 싶냐.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아버님한테 전해.
환불 안 되는 티켓이니 받을 돈도 없고, 그럼 그러시라고 해.
나도 한국 가서 가이드니 통역 수발이니 덜하고 됐네. 뭐


저녁 늦게 아버님께서 손수 내게 따로 문자를 보내셨다.

'몸은 좀 어떠냐. 오랜만에 손자 본다고 학수고대했는데 그게 막판에 취소가 되니 너무 화가 나서 홧김에 그랬다. 미안하다. 사과 하마.'


결국 그럴 거면 왜 이 사단을 만들었냐며.

내가 무슨 동네북이냐.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고.

너네가 막 화를 싸지르고 몰아붙이고 내가 무슨 너네 감정 쓰레기통이냐.


지네 부모님한테 모진 소리는 못하고

맨날 만만한 나만 들들 볶아서

거길 그렇게 기어가고 싶니?

니가 못할 거 같으면 차라리 내가 나쁜 년하고 그냥 안 가겠다 말해도 돼.

근데 착한 사람 괜히 애뭉하게 나쁜 년 만들지 말어. 좋은 말 할 때.


이리 매몰차게 씹던 껌처럼 남편에게 퉤 뱉어버리고 싶지만,

'그래.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보여드려야지 그래도.'

결국은 이러면서 나는 씩씩거리며 또 애들 짐을 싼다.

매달 찾아오는 홍양처럼 성질도 내었다가 혼자 삭혔다가 식었다가.


남편아 그래도 가끔은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맨홀 뚜껑 열리기 전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