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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Feb 08. 2021

프랑스 남자와 경상도 여자가 만났을 때 3

첫째 아들이 학교에서 감기를 달고 오더니 온 집안 콜록콜록거리고 다니더니만 둘째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코로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운지 밤새 계속 깨는 둘째를 간호하다 보니 내게도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환절기 그즈음되면 '또 한 번 온 가족이 아프겠구나.' 그러려니 한다. 나는 강철체력으로 태어나서 감기가 1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는데 어린아이들 밀착 케어를 하다 보니 감기 바이러스를 피해 갈 수가 없게 됐다.

작년 말 즈음 그리고 올해 초 몸살을 두 번 앓았다.


아기가 아프면 엄마가 마음은 찢어지더라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발을 동동 굴리면 된다지만 엄마가 아프면 정말 답이 없다. 온몸 관절이 저려오는데 돋움발 닫기를 하며 짜박짜박 소파 잡고 걸어오는 아들이 안아달라고 하면 내 몸이 부서져라 안을 수밖에 없는 '엄마'라는 숙명을 타고났기 때문.

그래서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즈음, 냉동고에 얼려둔 곰탕 거리를 일단 데운다. 고춧가루 팍팍 쳐서 뜨거워서 입이 델지언정 한 사발 쭉 들이키고 목도리 감고 두꺼운 디건 하나 내어 입고 이불 뒤집어쓰고 땀 내기 돌입한다. 땀을 뽁 내고 자고 일어나면 한기가 살짝 들더라도 그다음 날은 말짱하다.

처음에는 비장하리 마치 꼼꼼히 챙겨 입은 옷이며 목도리를 두르고 침대에 들어 눕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싸맨 복장을 보면 '아. 우리 마누라가 아프구나' 그쯤은 눈치로 이젠 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약을 잘 안 줬다. 엄마가 어릴 적에 몸이 많이 아팠는데 그땐 참 약이 귀했다고. 엄마는 우리 키우는 동안에는 큰 병이 아니고서는 감기 그 즘이야 파카 입고 전기담요 불을 7로 올리고 땀 쫙 내라며 매일 그 소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약을 잘 안 달고 산다. 몸 좀 고생시키면 웬만해서야 3일 안에는 다시 괜찮아지니까 그냥 한번 아프지 싶다. 출산하고 난 다음에도 병원에서 주는 진통제는 하루만 이틀만 챙겨 먹고 셋째 날은 별 다른 고통이 없어서 더 이상 진통제도 안 먹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함께 사는 양반은 약을 달고 산다. 목이 아프다, 몸살 기운이 있다 하면 일단 서랍 안 쟁여두었던 약봉지부터 꺼낸다.

한 번은 목이 아픈 게 좀 오래갔는지 약국에서 목에 좋다는 약은 다 쓸어온 모양으로 식후에 약을 이것저것 털어 넣었다. 자기 전에 유칼립투스 오일이 들어있는 따끈한 찜질을 20분 해도 그놈의 큰 코가 영 말썽인가 보다. 그렇게 '약'정성을 들이고도 일주일은 골골한 상태로 지낸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는 미션은 애들 케어와 환자 한 명 담당일 때가 많다. 내 컨디션이 더 쌩쌩하니 어쩔 수 없이 몸을 더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됐다.

가끔은 어찌 전생에 일만 하다 죽은 소가 부활했나 싶을 정도로 일복이 많은 내가 참 싫었다. 불면증에 잠 못 자고도 커피 한잔으로 짱짱하게 버티는 걸 보면 모질다 싶었다. 남편은 이런 나의 무한 체력을 믿고 넋 놓고 소파에 앉아 나를 마치 리모컨 조종하는 것도 억울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냥 팔자인 거 같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손이 엄청 큰데 어릴 적 엄마가 나의 손을 보면서 피아노를 꾸준하게 쳤으면 기깔나게 피아노를 잘 치든 일복이 끊이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피아노는 선생님이 오시면 피아노 깔개를 목에 두르고 피아노 의자에 반 누워서 시위한 적이 여러 번이었으니 타고난 장비가 아깝게 피아노 실력은 그저 그만으로 남았다.  하지만 타고난 일복은 손복인지 여하튼 많은 건 분명하다.




마른빨래를 갤 때 남편 옷이 많이 걸려 있으면 일단 그날은  때에 손이 더 많이 간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옷을 비롯한 애들 옷은 대강 둘둘 게어서 옷장에 한 번에 정리를 하면 되는데  남편은 옷을 갤 때 특별한 규칙이 있다.

바로 각잡기.

매장에서 색깔대로 옷 크기가 딱 맞추어 늘어선 옷들을 보면 남편의 옷장을 연상케 한다. 양말이며 팬티며 각 잡고 들어선 걸 보면 이 사람 살던 방식 데로 따라주어야지 싶지만 가끔은 집안일이 넘쳐 날 때는 남편 빨래를 겔때면 화 딱 질이 난다.

나의 이런 소심한 반항심을 아는지 가끔은 자기 빨래만 쏙 빼서 남편이 스스로 게고 마는데 그럴 때 보면 영락없는 이기주의자 같다.


연애할 때에도 여행 후 짐을 다 정리하고 내 옷가지만 가지런히 침대 위에 올려둔 것을 둔 것을 보고 매몰차게 정이 없니 한소리를 했더니, 내 옷가지를 어디 정리해 넣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두었단다.

나야 옷가지 둘둘 말아 게는 사람이므로 어디든 넣어두면 땡큐고 양말 그리고 속옷만 제자리에 두면 되는데 그게 안된다는 소린가보다. 


지금은 볼맨 소리를 여러 번 들어인지 내 옷도 가끔 게 주곤 하는데 둘둘 말린 옷가지 사이로 각 잡힌 옷이 늠름하게 '뙇' 올라와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난다.

치약 짜는 거 갖고도 신혼 때는 싸움을 한다는데 우리는 빨래 각잡기 때문에 - 서로의 다른 생활 습관 때문에 과거에도 여러 번 싸우고 지금도 그 싸움은 여전히 간간이 진행 중이다.


'우리'가 중요한 한국사람은 정이 많고,

'나'가 중요한 프랑스 사람은 자기 생각이 더 중요하고,

그러다 보니 가족 안에서 공통적인 일을 처리할 때는 내가 좀 더 손해 보는 느낌이다.

넌 이기주의자야! 아주 정이 없어 아주!


요즘 내가 남편에게 많이 뱉는 말이다.

말해 뭐하나.

뼛속까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나를 이해해 달라고 잡아두고 얘기하는 것도 가끔은 지친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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