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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Jan 17. 2021

프랑스 남자와 경상도 여자가 만났을 때 1

패션 그리고 음식 이몽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흔히 경상도 남자들이 집에 돌아오면 부인에게 한다는 세 마디 "밥 묵자.", "아는?", "자자". 

그걸 어려서부터 직접 듣고 자란 나로서는 지금 남편이란 존재는 쇼킹 그 자체였다. 처음에 우리가 연애를 할 때만 해도 내가 프랑스어를 "봉주르, 메흐씨" 밖에 못하는 상태여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프랑스어는 부드러운 소리 매체로 귓가에 전달되어 보이지 않는 매력이 더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 어떤..... 달큼한 크림 따끈한 초콜릿이 녹아든 그런 느낌이었달까.

 

넌 참 예뻐.
  

그는 참으로 한결같게 내게 이쁘다는 말과 함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순정파 남자다. 뜨거운 연애기간 때에도, 아이들 둘 낳은 내가 이제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내게 그런 말을 한다.

그 눈빛과 다정한 말은 가끔 정말일까 싶기도 하지만 경상도 아가씨인 나에게는 때론 오글거림이기도 했다. 

'여자를 많이 만나본 능구랭이가 아닐까?'

'아무나 만나면 눈에 하트 뿅뿅 탑재하고 다니는 거 아닌?'

그런 걱정은 곧 사라졌다.

연애를 시작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여자를 잘 모르는 순수한 프랑스 시골청년임을 알게 됐다. 여자를 에스코트해주는 것은 그저 그들 문화에서 자라서 그런 것일 뿐 - 내가 '갱산도'에서 태어나서 구수하고 찐한 싸나이들만 보고 자라다가 이런 희귀종을 처음 겪어봐서 더 극단적으로 느끼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어느 날은 나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더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 눈썹을 정리하러 Salon de beauté (미용실)을 가야 할 거 같다며 다짜고짜 예약을 한.

여자들은 모름지기 눈썹 뒤꼬리가 얄쌍하게 해야 이쁜데 왜 눈썹 뒤 정리를 안했냐는 것이 그분의 설명.


너 이렇게 다니면 파리 여자들이
저 여자는 왜 관리를 안 하지, 그렇게 얘기 들어.


'내가 내 일생을 통틀어 내 얼굴에 불만이 없다는데 러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 여자들이 내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뜯어보지도 않을뿐더러 뭐하러 돈을 들여서 눈썹을 얄쌍하게 정리해야 되나 싶었다. 괜한 데 따라갔다가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미용실 언니들이 '또 어느 중국 여자가 자기네 나라 남자를 하나 꼬셨네' 뭐 이런 매정한 눈빛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나의 의견을 불사하고 한 번만 정리를 해보자며 데려간 미용실에서 눈썹 정리 그리고 피부 미용 장작 1시간 받았다. 파리에 사는 여자들은 다 이렇게 피부 미용도 정기적으로 받고 하나 보네. 부산에서는 나는 선크림만 열심히 바르고 다녔는데 (나는 화장도 첫 직장을 다니고서도 한참 있다가 시작했다- 어릴 때는 톰보이 기질이 다분해서 나의 여성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아마 26 그즈음?) 여하튼 돈 들여 피부 미용을 받으니 반들반들하고 좋긴 하다.  


그리고 미용을 받고 나서 아주 만족하는 표정으로 한 술 더 뜨는 남편의 한마디,

아참 그리고 니 콧수염. 잘게 난 거는 밀지 마. 
나중에 더 거묻거묻하게 나니까.
그런 건 레이저로 아예 없애야 돼.


연애 초기라 잘 보이고 싶기도 했고 미용실을 가는 것이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므로 조근조근 그가 제안하는 데로 따랐지만 내 콧수염 얘기는 허를 찌르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렇게 여자를 앞에 세워두고 콧수염 얘기를 지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넌 대체 정체가 뭐냐?' 

 

그는 여자를 잘 아는 선수과가 절대 아니다. 

그저 눈썰미가 좀 있어서 내게 어울릴만한 아이템을 잘 찾아주는 정도이다. 그러나 남자가 이렇게 여자 친구 패션에 관심이 많으니 누가 뭐라든 독일에서 자유롭게 입고 다니던 나로서는 브레이크가 자주 걸리는 상황이 생겼다. 

내가 혼자서 쇼핑을 할 때면 어떤 옷을 샀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야 했다. 한 번도 내가 사 온 물품에 대해서 반품을 하라고 얘기를 들은 적은 없어도 예를 들어 '그런 셔츠면 하얀 바지가 청바지보다 잘 어울리겠다.' 이런 피드백은 꼭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들에게서 '프랑스 남자 친구를 만나더니 스타일이 좀 달라졌다.'는 얘길 종종 들었다. 더 여성스러워졌다는 것은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건지 그냥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로 입는 건지 - 이제는 분간이 안 간다. 


  



남편은 요리도 곧잘 해서 부엌에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예쁜 접시에 담아낼 줄 아는 남자였다. 집안 내력 자체가 남자들이 요리를 더 많이 해서 그런지 남편을 포함한 시동생들도 다들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남편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첫째 아들도 옆에서 잔일 거리를 같이 하다 보니 두 부자가 요리를 하는 장면은 내가 부산에서 산 25년 동안 한 번도 목격 못한 희귀 장면이었다. 어릴 때에 아빠가 부엌에서 라면 끓이는 일 외에는 요리라는 것 자체를 안 했었으니까. 삼시세끼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온전히 엄마 담당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도 돈 버는 것은 바깥일 하는 남자의 일이요, 요리와 설거지는 여자의 일이라 생각했고 양성평등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기 전까지 그저 그런 줄 알고 컸다. 


프랑스에서도 음식은 그래도 보통 내 담당이다.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손이 빨라지기도 했고 불을 이중 삼중으로 사용하면서 멀티를 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겼다. 나는 아직 한식을 좋아한다. 10여 년 넘게 외국에서 살았더라도 하루 한 끼는 꼭 한식으로 먹어야 한다. 그래서 긴 시댁 투어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그 날 메뉴는 꼭 라면이다. 남편은 한식이나 프랑스 식이나 다 잘 먹는 편인데 어떤 메뉴를 메인으로 먹었든 간에 디저트로 꼭 치즈와 바게트를 먹어야 한 끼를 잘 먹었다고 마무리가 되는 양반이다. 그러다 보니 나 한식, 남편은 프랑스 식 그리고 첫째 아들 한식 or 프랑스식 이렇게 가끔은 메뉴가 두세 개가 될 때가 많다. 내가 매운 것을 먹는 날에는 아들의 요리는 한식이지만 맵지 않고 짜지 않은 메뉴를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파게티를 삶으면서 미역국을 끓이고 아들의 볶음밥을 볶는, 이렇게 불을 삼중으로 쓰는 일은 내게 흔한 일이 됐다. 


2017년 12월, 

첫째가 7개월일 때 우리는 한국 친정에 크리스마스 2주 휴가를 내고 갔다. 

임신 기간 동안 심한 입덧으로 5킬로 이상 빠졌을 때도 간간이 움직이는 위장의 연동 운동을 돕기 위해 먹방을 무지하게 돌려봤다. 그래야 없어져가는 식욕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방 중에서도 단연 간. 장. 게. 장!

그렇게 임신 기간 내내 간장게장 먹방을 수백 번 돌려보고 아기를 출산하고 프랑스에서 간장게장을 구하질 못해 한국에 가기 며칠을 앞두고 엄마한테 부탁을 했다.     

장작 17시간 부산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그 다음날 아침, 비몽사몽간에 남편은 먼저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신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이 빵에 잼을 발라서 달달음한 한 입에 뜨끈한 커피 한 모금을 곁들인다. 그리고 마무리는 딸기 요플레.  

나의 아침은 뜨끈한 하얀 쌀밥 위에 살얼음이 얇게 드리워진 간장게장 몸통 반쪽이 내 밥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덤으로 나와 있는 파김치와 총각김치는 저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 이거지.' 

개별 포장으로 된 한 통에 커다란 게가 두세 마리쯤 들어 있는데 그날 아침 작은 두 통을 다 먹어치웠다. 쪽쪽 게다리를 빨아먹는 나를 보며 남편은 어색한지 커피를 홀짝인다. 남편이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든 지금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난 내 앞에 놓인 간장게장에만 충실할 뿐 - 어차피 돌아가면 다시는 또 못 먹을 이 귀한 것을, 가기 전까지 삼시세끼 질리도록 먹을 거다, 난. 


오해하지 마. 한국에서도 아침밥으로 간장게장은 흔한 건 아냐. 

 

한마디 실드를 쳐두긴 했지만 프랑스로 돌아와서 역시나 마치 영웅신화 마냥 남편이 시댁에서 그 에피소드를 여러 번 읊은 통에 나는 아침으로 간장게장을 먹는 여자가 됐다. 생선 비린내가 있어서 생선을 일절 안 드시는 시아버님은 미간을 찡그리시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와 남편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네, 아버님. 뻥 아니고 사실 맞습니다.' 


가끔은 내 남편이 누런 내장이 곁들여진 게딱지에 흰쌀밥 같이 비벼먹을 수 있는 남자였으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한식은 특히 매운 것은 나보다 더 잘 먹는 남자이지만 물에 빠진 닭 (닭뼈 붙어 있는 살 부분) 그리고 국물 종류는 절대 거절이다. 삼계탕 한 그릇 쭉 들이키고 땀 쫙 내고 이게 내 일상인데 남편은 옆에서 점잔 하게 뼈 다 발려진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포크로 썰어 먹는다. 

아! 이 식탁이몽.


인간에게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끼니를 때우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맛있지? 너도 먹어볼래?' 함께 공감을 하고 맛을 음미하며 그것은 곧 삶의 즐거움이고 사랑이다. 

우리에게는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공간상의 가까움은 있을지라도 '니가 먹는 그 맛의 기쁨이 곧 내가 먹는 기쁨이요'라는 맛에 대한 공감을 없다.    

아쉽지만 어떠하랴, 

지구 반대편 남자를 고른 것은 결국 내 선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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