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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Jan 27. 2021

프랑스 남자와 경상도 여자가 만났을 때 2

이심전심

첫째를 출산할 당시,

산부인과 전문의가 주수에 비해 아기가 큰 편이라 우리에게 38주 차에 유도 분만을 권했고 당시에 유도 분만의 성공률이란 것이 반 정도밖에 못 미치는 그야말로 복불복이라는 것을 모른 채로 그저 무거운 몸에서 곧 해방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목요일 저녁 병원에서 유도 촉진제를 맞고 나올 준비가 안된 아기와 억지로 자궁문을 열기 위한 의료진들의 사투, 그 사이에서 정신이 탈탈 털리고 몸이 만신창이가 된 내가 있었다. 금요일 하루 종일 진통을 하고서 자궁문을 거의 다 열고도 아기가 내려오지 않아서 토요일 새벽 긴급 제왕절개가 결정되었다.

안타까움에, 섭섭함에, 아기에게 미안함에,  '좀 더 참질 그랬나.' 하는 후회와 함께 여러 감정들이 밀려왔다.

 

수술실에서 아기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꼬매는 수술을 다 끝냈을 때,


핀셋 이런 거 다 잘 빼시고 집도하신 거 맞죠?
우리 아내 배 안에 뭐 잃어버린 거 없으시죠?


저 너머에서 들리는 남편의 한마디.

'으이구, 이 상황에 지금 그걸 유머라고 하고 앉았냐!'


남편의 실없는 유머 한마디가 차가운 수술실 공기를 바꿔놓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끝이 났고 나는 이틀 동안 출산으로 힘든 그 와중에도 속으로는  0웃음이 났다. 던지는 농담이 정말 우스워서 사람이 배를 잡고 웃기도 하지만 때론 그 타이밍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피식'새기도 하는데, 남편의 유머는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

나중에 남편에게 왜 그런 농담을 했냐 그랬더니 - 수술실에 들어왔을 때 내가 생각보다 너무 피를 많이 흘려서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실없는 농담 던질 여유가 좀 있었다고.


남편의 모든 유머가 다 장외로 쭉쭉 뻗어가는 시원한 홈런볼이진 않다.

그래도 6할 정도는 안타나 가끔은 홈런일 때가 있다. 우리가 다른 점은 나는 너무 무겁게 분위기를 잡는다는데 있고 남편은 실없는 농담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좀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다르다.  


가끔은 나도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내가 진중한 사람만이 아님을, 때론 나사 하나 빠진 사람 같은 허당끼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웃음 코드가 같다는 것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이해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고서야 한마디 농담 하나 환한 웃음이 가능한데 그래서 가끔은 참으로 어렵다.

나를 7년이나 봐온 시댁 식구들은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말에 어떻게 반응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가끔은 진중한 농담을 던져도 잘 웃어줄 때가 많다.

이렇게 나를 오래 봐온 사람들은 그제야 나를 너무 진지하지 않은 사람으로 이해해주기 시작하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 나라는 사람을 알리는 것은,

나의 유머 코드를 그들에게 인지시키는 일은,

때론 고되고 힘들다.


나도 홈런 팡팡 날리고 싶은데, 프랑스 사람들 앞에서 그게 잘 안된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 아빠의 산책은

아빠는 5미터 앞서거니 걷고 엄마와 나는 아빠를 뒤쫓아 걷는 게 우리가 함께 하는 산책이라는 거였다. 산책하는 동안에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서로가 대화가 없었다. 저녁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온 식구가 함께 하는 식사는 8시 뉴스 소리가 정적이 흐르는 우리 집 유일한 소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투박한 경상도 집에서 컸지만,

엄마는 전화 너머에서 내 목소리만 들어도

몸 상태가 어떤지 금방 아는 초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대화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어떤지 굳이 읊지 않아도, 마음으로,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우리 부모님이었다.


남자들은 모른다.
니가 생각하는 거 그대로 알아주겠지?
절대 아이다.
돌려말하지도 말고 딱 정확하게 말해도,
알까 말까 하는기 남자라는기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내 마음을 잘 알아주겠거니 했는데

우리 부모님처럼 내가 어떤 상태라는 것을 마음으로 눈으로 알아주길 바랬는데 그는 그냥 그였다.


엄마 충고대로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눈앞에서 정확히 얘기해도 그는 덤덤했다. 두세 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나서야 '아하. 그래?' 하고 반응의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를 온몸을 깎아가며 내 부모처럼 피와 살을 나눈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그저 어떤 인물일 뿐이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살을 부대끼며 7년을 살아온 남편이라 해도 여전히 그는 내가 내가 고민하는 바를 엄청나게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하고 또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남자다.

아쉽게도 그는 타고난 독심술가가 아니다.

진짜 화가 나서 머리꼭지가 돌아버리겠는데도 치사하게 마치 왜 내가 화가 지금 났는지 일일이 따지고 설명해야 고개를 끄떡이는 게 우리 남편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권이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본연의 남녀의 차이일수도 있겠다.

한 남편과 '그래도 언젠간 알겠거니' 하는 내 착각 사이에서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기로 했다. 애뭉한 시간 쪼개지도 말고 애매한 비유도 필요 없이 말이다. 번잡한 말이 오가고 작은 일에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두 아이들 다 키워두고 둘 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이 되면 그때서야 눈빛만 보아도 마음이 통하는 때가 오려나.


이심전심 - 결혼 5년 차에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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