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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Oct 26. 2020

내겐 너무 잦은 시댁 투어s

프랑스 시월드 이야기 4

효자 아들인 서방님을 탓해야 하나.

'언제쯤 오니?' 은근슬쩍 문자 보내시는 시부모님을 탓해야 하나.

고생스럽게 시댁이란 곳을 그냥 가기 싫은 내 변덕스러운 마음을 탓해야 되나.


우린 시댁 투어가 너무 잦다.

(사실은 시댁투어s 가 되겠다 : 시부모님 두 분이 이혼하신 상태라 두 집을 다 돌아야 되는 상황)

각각 부모님 생신 + 부활절 + 크리스마스 + 기타 등등 거의 두 달에 한 번씩은 어디를 움직이는 거 같다.


남편과 연애시절, 남편은 1달에 두 번 그러니까 2주에 한 번씩은 시골을 내려간다며 내게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총각이 사뭇 효자 냄새가 폴폴 나는 사람임을 그때 감지했어야 는데.




결혼 초기에는 시댁에 따라가는 게 참으로 싫었다.

차라리 가기로 약속된 날에 위장병이 났으면 했다.

프랑스어가 더 안될 때라 시댁에 가면 들판에 꽂아놓은 포대자루 마냥 존재감도 없고 듣는 귀도 없이 그저 웃는 시늉으로만 3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다 함께 있는 저녁식사 자리에 단 하나뿐인 통역인 남편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오줌 마려운 강아지 마냥 나는 의자에 앉아 어쩔 줄 몰라했다. 그 3분이 내겐 너무 길었다. 

나중에 프랑스어가 이해가 좀 되기 시작하고서 식탁 위 오가는 대화가 시시콜콜한 별다른 이야기가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허탈함은... 


아기가 낳고 나서는 '아기를 보여드린다'는 이유로 자주 소환되었다.

그놈의 짐은 왜 징그럽게 많은지. 또 그 짐을 챙기는 담당은 항상 나다.

여벌 옷, 아기 샴푸, 기저귀, 턱받이, 각종 크림, 등등. 2박 3일을 가는데 한국 가는 케리어 짐처럼 그냥 한 보따리이다. 


예전, 시부모님 두 분이 헤어지고 나서 그래도 같은 동네에 사실 때는 그나마 한번 가면 그다음 소환일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벌렸다. 한 번 갈 때 하루는 어머님 댁, 남은 하루는 아버님 댁 이렇게 중간에 짐을 었다 다시 싸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도 그나마 어느 정도는 할만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다른 동네로 이사하시고 나서는 한번 움직이면 한 곳에 더 오래 머물긴 해도 시부모님이 서로 자식들이 언제 다녀갔는지를 더 견제하시는 거 같았다.


그 많은 짐을 트렁크에 욱여넣고 두 아이를 태우고 2시간여 되는 길을 차를 타고 간다. 대부분 낮잠 시간에 맞춰 가긴 해도 점점 낮잠이 없는 첫째와는 차 안에서 온종일 떠들며 같이 놀아줘야 된다. 그렇게 주말을 불태우고 나면 다시 그 담주는 시어머니 댁에 가야 하는 뭐 그런 식이다.

낯가림을 시작한 둘째는 집이 아닌 다른 데서 자는 상황이 낯설어 도착 첫날은 거의 안아재우다 시피 해야 되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서방님은 눈치가 없는 건지 부모님과 시시콜콜한 얘기로 육아가 뒷전인 것만 같다. 



작년 시아버님과 막내 시동생 내외 이렇게 다 함께 한국에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한국을 가기 한 달 전 즈음 시아버님 댁 방문 예정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그렇게 먼 여행은 처음이어서 다소 긴장도 되고 걱정이 슬슬 되시는 모양이다. 

내가 둘째 임신을 하고 한창 입덧을 할 때라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리고는 월요일부터 시작된 몸살기가 금요일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은 아버님께 못 갈 거 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버님에 답문이 오기를,

'그럼 나도 그러면 한국 안 가련다.'


이 무슨 7살 소꿉장난 같은 말인가.

몸이 아파 못 가겠다는 며느리를 두고 지금 이걸 협박이라고 하시는 겐가 싶었다.


그리고는 찝찝한 문자를 받은 그다음 날, 토요일 아침 - 서운해하시는 아버님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남편이 내게 말하는 게 더 가관이다. 

"너 그 이기심 때문에 너 지금 3명을 마음 아프게 한 거 알아? 몰라?

아빠, 나 그리고 우리 아들..  아들한테도 그렇게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 집 가자 가자 약속만 잔뜩 하더니 막판에 정말 이러기냐?" 

저게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인다 싶었다.

이렇게 골골대는 나를 휘휘 저어서 어쩌고 싶냐.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아버님한테 전해.
환불 안 되는 티켓이니 받을 돈도 없고, 그럼 그러시라고 해.
나도 한국 가서 가이드니 통역 수발이니 덜하고 됐네. 뭐


저녁 늦게 아버님께서 손수 내게 따로 문자를 보내셨다. 

'몸은 좀 어떠냐. 오랜만에 손자 본다고 학수고대했는데 그게 막판에 취소가 되니 너무 화가 나서 홧김에 그랬다. 미안하다. 사과 하마.'


결국 그럴 거면 왜 이 사단을 만들었냐며.

내가 무슨 동네북이냐.

리치이고 저리 치이고. 

너네가 막 화를 싸지르고 몰아붙이고 내가 무슨 너네 감정 쓰레기통이냐.


지네 부모님한테 모진 소리는 못하고

맨날 만만한 나만 들들 볶아서

거길 그렇게 기어가고 싶니?

 못할 거 같으면 차라리 내가 나쁜 년하고 그냥 안 가겠다 말해도 돼.

근데 착한 사람 괜히 애뭉하게 나쁜 년 만들지 말어. 좋은 말 할 때.


이리 매몰차게 씹던 껌처럼 남편에게 퉤 뱉어버리고 싶지만,

'그래.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보여드려야지 그래도.'

결국은 이러면서 나는 씩씩거리며 또 애들 짐을 싼다.

매달 찾아오는 홍양처럼 성질도 내었다가 혼자 삭혔다가 식었다가.


남편아 그래도 가끔은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맨홀 뚜껑 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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