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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Dec 29. 2020

이상한 나라의 시어머니

프랑스 시월드 이야기 5 - 제 자녀계획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항상 찝찝하다.

시댁에서 돌아오는 길은.

패전하고 나서의 씁쓸하고 더러운 기분을 씹는 중이다.

괜한 남편만 긁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더 억울한 마음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결혼 6년 차.

처음에는 그분의 말씀을 잘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잘못들은 것일 거다.' 혹은 '단어의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일 거다.' 혼자 고뇌하는 시간이 좀 있었다. 그러다가 '너네 어머니는 왜 그러시는 거냐?', '참으로 이상하시다.' 하고 남편을 잡는 그 후 몇 년이 더 있었다. 남편이 여자 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뭉한 담배만 계속 피워대는 것을 보고 그마저도 그만두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시어머니의 말을 곱씹지 말자 대뇌이며

'화를 내는 것은 자기 속에서 일어난다.' 하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참선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아보는 마음으로 시댁을 방문한다.

하지만 늘,

두서 달에 반복되는 시댁 투어에서.

부딪히지 않고 일상을 편히 지내다가 시댁만 가면 끓어오르는 불꽃은

'그래. 두서 달 잠깐 하는 수행으로서는 해탈의 길에 오르긴 어렵겠다.' 생각을 잠시 했다.



얼마 전 한창 프랑스 시월드 얘기를 재미나게 쓰다가 오랜만에 내 글을 읽어준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글에 너무 화가 잔뜩 들어가 있더라. 시댁에 너무 한 맺힌 거 아니니?


그래, 내가 벙어리 3년에, 귀머거리 지금까지 한 5년에 오랫동안 입에 거미줄 치고 할 말 못 하고 그리고 할 말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그러다 보니 글에 한이 서린 게 납득 못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오해였을지 모를 시어머니 말씀에 꼬투리를 쥐고 지금까지 잘근잘근 씹다가 재탕 삼탕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5분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나도 한낱 인간인지라,

남의 세치 혀끝 한마디에 흔들리는 작은 개미 같은 존재라

작은 한마디에도 마음이 꽁하며 큰 아량이 없는가 보다.




시아버님 댁 일주일

그리고 시어머니 댁 투어 삼일,

길고 긴 시댁 투어에 부어라 마셔라 매일 먹는 와인도 지겹다.


둘째는 집이 두 번이나 바뀌니 시어머니 댁에 도착해서는 또 여기는 어디냐며 눈이 동그랗다. 첫째에게는 산타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댁도 들르고, 할머니 댁도 들르고, 우리 집에도 선물을 놓고 간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에 걸쳐 설명해야 했다. 지금이야 어린 나이에 이 집 저 집 선물이 많아서 좋지만 나중에는 "친구 집 산타는 25일에만 왔다 갔다던데?" 하는 날이 올 시에 글쎄,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는 그때 가서 고민해봐야겠다.


시어머니 댁 도착해서 첫날, 이삿짐 수준으로 싼 케리어 서너 개를 풀고 잠시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시작된 애피타이저 시간,


셋째는.. 딸로 낳아야지? 응?


8개월도 채 안된 둘째 이유식을 먹이고 있는데 뜬금없는 셋째 공격이다.

헉. 무방비 상태에서 폭격당했다.

너무 정신없는 와중이어서 어버버 하다가 흐지부지 말 못 하고 끝나고 본격적으로 점심을 먹는 중에 한 번 더 셋째에 대한 물음이 이어진다. 시댁 도착한 그 날만 셋째 얘기를 세 번은 들었다.

내가 결론 나지 않는 계속되는 물음이 지겨워서 남편을 가리키며 '아드님이랑 상의하셔라.' 했더니만 남편이 두 시동생 포함해서 커플이 셋인데 이중에 왜 우리만 갖고 그러시냐 겨우 한마디 소심하게 대든다.


물론,

나도 사실 셋째를 갖고 싶다.

지난번 글을 적은 바와 같이, 셋째를 갖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다. 다만 남편이 동의를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남편의 의견을 존중한다. 무릇 출산과 육아라는 것이 여자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대로 두 아이의 엄마로 충실하게 살면 그만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가족계획은 시어머니가 감 놔라 배 놔라 하실 문제는 아닌 거 같다.

그것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겠다고 애들 둘에, 2시간 차를 몰아 왔더니만 돌도 안 지난 둘째를 앞에 두고 산후조리가 이제 끝난 며느리 앞에서 셋째 거론은 너무 나가신 게 맞다.


셋째 시동생 여자 친구도 그날 저녁 크리스마스 식사자리에서 '지난번 화장이 좀 이상하더라. 이번에는 그런대로 괜찮다.'라는 시어머니의 지적을 받았단다. 둘째를 재우고 내려오니 똥앂은 얼굴을 한 여자 친구의 얼굴을 보고 난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남편이 해주는 말을 듣고 혼을 실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나.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좋을게 무엇이 있을까.

손녀딸을 한번 못 안아 본 게 그게 그렇게 서운하실까.

정말 이상한 나라의 시어머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다다다 쏟아내는 나를 두고,

"그래. 이번에는 엄마가 좀 심했네."

남편이 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았다. 그 말을 들으니, 입이 더 이상 전투력을 잃었다.

엄마가 악의 없이 하는 얘기는 아니라며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 그럼 대체 무슨 의미로 하시는 얘기일까 - 물어볼까 하다가 결론 안나는 얘기에 괜한 화만 돋우어서 무엇하리 입을 닫았다.

첫째 아들이 나를 쏘아보며 "엄마 경고야. 이제 그만해!" 란다. 말귀 알아듣는 아들 앞에서 할머니 욕하는 엄마라니... 그래, 내가 죄인이다. 내가 그만한다.


내가 두 며느리를 맞는 날이 돌아오면 그때 즈음 어머니 마음을 십 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땐 내가 입을 닫고 조용히 살든지 여전히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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