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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Oct 19. 2020

프랑스 아들 그리고 나는 한국 엄마

언어가 주는 공감 그리고 기억

외국에 산지 10여 년이 넘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엄마는 훗날 우리 집안에 외국 사위가 들어올 수도 있겠다 어림짐작을 했다고 했다.


남편을 집안에 소개를 시켜준 것은 내가 독일에 있을 때 그리고 남편이 프랑스, 이렇게 장거리 연애를 할 때였다. '이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했을 때 엄마 아빠는 그저 뜨뜨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약대 공부를 그만두고 결혼하겠다고 소개를 한 남자라 엄마 아빠에게는 이미 남편이 본전도 못 건지는 마이너스 점수였기 때문. 

딸이랑 결혼한다고 하는 이 남자에게 건강은 한지, 재산은 많이 모아뒀는지 우리 부모님은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파란 눈의 사위에게 그게 다소 실례이지 싶어 말을 많이 아꼈다고 했다.

한국 사위였다카면 장닭을 푹 삶아가
술도 한번 맥여보고
우리 딸 데려다가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조근조근 살펴볼낀데...





아들은 내게 프랑스어로 답을 한다.

한국말을 이해는 하지만 아들에게는 이미 프랑스어가 더 친숙한 모양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서 하루는 내가 새벽에 일어난 아들을 달래주러 방에 갔다.

엄마가 아기랑만 시간 보내서 룰루가 슬펐지?


한참 듣던 아들은

"슬프다, ça veut dire quoi?" (슬프다란 게 뭐야?)


기본적인 감정의 교감조차 내 나라 말로 전달이 안된다는 게 그날 처음으로 진심 슬. 펐. 다.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머릿속은, 그의 생각의 회로는 프랑스어로 발달되고 있다는 게 가슴 뻥 뚫린 것 같은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난 내 자식과도 이렇게 머리를 굴리며 외국어로 대화를 하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미래 남편은 어렴풋하게나마 코쟁이일 것이란 어렸을 때 상상이야 해봤어도 내 아들마저 내가 반코쟁이로 키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분명 모국어가 주는 포근함 그리고 친근감이란 것이 있다.

내게 한국어는 시장 골목 따끈한 어묵 국물이자 달달음한 똥과자 같은 거다. 내가 어릴 적 부산 바닷가를 누비던 어린 기억의 조각이고 늘 그리운 추억을 담고 있는 언어이다.


아들에 어린 기억이라 하면 프랑스 바게트나 그리고 시골 시부모님 댁에서의

추억이 되겠지.

그게 벌써 왠지 모르게 슬프다.


프랑스에서 크는 아이라 이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그냥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보고 싶다. 내 아들도  따끈한 어묵 국물의 맛을 그리고 시장통 정겨운 정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만 하고 '너는 너, 나는 나' 개인주의만 있는 프랑스 아이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뼛속까지 한국 엄마인데..


엄마가 나중에 슬프다 그러면 또 슬픈 게 무슨 뜻인지 묻지 말아줘.

엄마 그럼 정말 서운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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