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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Oct 02. 2021

브런치와의 권태기

On & Off

새벽 4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심코 브런치에 접속했다. 

원래라면 이런 한가한 시간에는 유튜브 먹방이나 보며 멍 때리는 게 제일이지만 새벽 4시에 괜히 침샘을 자극해서 냉장고를 덜컥 열어서 좋을 일이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이젠 좀 무어라도 적어야 하지 않나, 하는 자괴감이 뱃속 너머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더니 이불을 들춰내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됐다. 

참으로 길고도 험한 길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밥을 먹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처럼 그 어떤 무언가도 마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단인 양, 그냥 꾸준히 하게 되면 좋을 진대 그런 것들은 늘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아님 정말 그 무언가에 미쳐있는 것이 아닌 이상. 

 

무슨 말을 먼저 적어야 할지 어떤 얘기를 먼저 하는 게 좋을지 통밥을 굴리고 있는데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 이젠 내가 너와의 권태기를 좀 끝내야 될 거 같다.' 


잊지 않고 꾸준히 배달되는 너의 아침 문자. 

작가님의 꾸준한 글쓰기가 창작의 기회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보세요. 


매일 아침, 그래도 열심히 어디선가 적고 있는 작가들의 글이 배달되면 늘 한숨으로 아침을 시작했지. 


'나는 왜 적지 못하고 있나.' 


새벽에 둘째가 잠결에 깨서 공갈 젖꼭지를 찾아 내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할 때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새벽, 불현듯 머릿속을 지나가는 아름다운 문구가 지나가더라도 나는 과감히 눈을 다시 감았다. 

불과 1여 년 전, 신생아 키우던 시절 못 자던 잠을 할애해가며 브런치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땐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면서도 갑자기 떠오르는 문구를 메모하곤 했는데, 참으로 그땐 진심이었다. 혼자 먹지도 혼자 자지도 못하는 어린 아기를 24시간 키우면서 나 혼자 '나도 여기 이렇게 살아있소!'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 그땐 그게 원동력이었다. 

내가 나를 지탱하는 힘, 내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기 이전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그런 것들이었다. 

한껏 글로 풀어내고 발행을 누를 때의 그 짜릿함. 

글 하나하나가 내겐 행복이고 위로이고 그랬다. 


이런 나의 브런치와의 허한 권태기 기간에도 누군가는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을 보면서,

비록 나는 권태기를 시작했지만 나의 글은 살아서 그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 

새벽이슬처럼 촉촉하게 마음이 적셔지곤 했다. 




사실, 권태기 동안에 많은 일이 있었다.

먹고사는 게 사실 바쁘긴 했다.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이 갑자기 문을 닫고 취업 전선에 내동댕이 쳐서는 내 앞에 잘 쓰인 이력서는 떡하니 4장인데 '나는 지금까지 무얼 하고 먹고살았나.' 할 정도로 한 게 없는 거 같았다. 


닥치는 대로 갑자기 원래 하던 영업직을 하겠다며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은 데이터 분석이다 결론 내리고는 인터넷 강의를 이것저것 열심히 듣는데 웬걸, 데이터 분석이란 게 왜 이렇게 어려워졌냐. 

내가 봐도 이건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다, 언제 데이터 분석 마스터가 되냐 싶었다. 

원래 하던 걸 하자니 그건 나의 도전 정신이 쉬이 허락하질 않고 영업 업종으로 하자니 업무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질 테니 그러자니 아직 애들이 어리고, 

내 합리화인지 정당한 이유인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었던 긴 터널 같은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취업에 열을 올리던 시간이 회사원이었을 때 보다 더 바빴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열심히 보고 데이터 분석 인강도 듣고 애들 저녁거리도 챙기고, 

매일이 하루가 이리 짧나 했다. 

아침에 시작돼서 자기 전까지 고도의 텐션을 매일 지속한다는 것은 적어도 6개월이 넘어서면 내가 미쳐 돌아가지 싶었다. 


아이들도 좀 키우고, 시간도 여유롭게 가지고 쉬고 하지 



엄마는 전화로 내가 푸념 섞인 얘기를 할 때마다 그냥 마음 놓고 쉬라 했다. 

애 낳고 애 키우다가 복귀해서 한참 일하다가, 지금이야 말로 국가에서 돈도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 좀 쉴 때인데 뭐하러 열을 그렇게 올리냐며 그냥 쉬어도 된다고 했다. 

이 코로나 시국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아마 배낭을 지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는 똘망똘망 내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게 쉽지 않았다. 

남편은 은근히 '또 면접 오라고 연락 온 데는 없었어?' 라며 등 떠밀듯이 내가 일을 했으면 하는 눈치다. 

그 모든 걸 떠나서, 내가 이렇게 멍청이구나 정말 쉬는 걸 못하는구나 싶었다. 

하루라도 원래 하던 루틴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결국은 하던 일 비슷한 쪽의 일을 찾아서 시작하게 됐다. 

사업 방향은 전혀 다른 곳이지만 어쨌든 일을 다시 하게 됐다. 

그리고 둘째가 걸음마를 하게 되면 집을 옮기자 했던 계획도 덜컥 실행하게 됐다. 

3개월이 지나면 작은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걸 보게 되었다. 아직 은행 대출이며 여러 각종 서류 작업들이 남았지만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브런치에서 권태기로 있던 나는 off 였지만 실상 생활에 열을 바짝 올리고 있는 나는 on & on이었다. 


그리고...

이제 너랑 왠지 권태기를 끝낼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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