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와 함께
11월 27일 첫눈이 내렸습니다.
하얀 빛깔을 내는 하늘이 아님에도 하늘에서 땅으로 새하얀 눈을 내려줍니다. 땅으로 내려오는 눈은 따뜻한 온기에 닿으면 사르르 녹아 버려 투명색의 물이 되어 버립니다. 언제 하얀색이었던가 할 정도로 말이지요.
그러나 차가운 온기에 닿으면 조금씩 조금씩 쌓여 모양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지요.
7살 작은 아이는 눈이 좋은가 봅니다. 손으로 만져보고 뭉쳐보고 발자국도 내보고 뽀드득뽀드득 소리도 들어 봅니다. 입을 벌리며 말을 하다가 눈이 입속으로 쏙 들어가기도 했지요. 의도치 않게 눈을 먹게 됩니다.
"엄마! 눈 먹었어" "맛은 어때?" "응? 아무 맛 안 나는데?" 서로 마주 보며 깔깔깔 웃었습니다.
"엄마! 나 학원 끝나고 놀자. 응?" "알았어"
1시간 30분 뒤 집으로 온 아이는 장갑을 찾습니다. "엄마 장갑 어디 있어?" "양말통 있는데 찾아봐" "찾았어~ 이제 가자" 같이 놀자며 대답을 했지만 한 시간 지난 뒤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춥고 귀찮았습니다. "햇님아, 엄마 커피 마시던 것만 좀 마시고 가자" "알았어. 빨리 마셔" "알았어" 신발까지 신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 재촉으로 마시던 커피를 그냥 두고 서둘러 외투를 입고 장갑을 챙겼습니다. 신나게 눈이 내리고 있으니 우산도 챙겼습니다.
놀이터에 간 햇님은 오리 모양, 눈사람 모양을 만드는데 전 서서 아이 눈 많이 맞을까 봐 우산을 씌워 주고 있었습니다. 즐겁고 신나고 낭만적이기보다 감기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였으니까요.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우산을 접어 그네 옆 기둥에 세워 둔 다음 아이와 함께 눈을 만지며 오리 가족을 만들고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눈싸움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요? 아주 신나고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외려 귀찮고 하고 싶지 않았던 제가 신이 났었던 것 같았습니다.
"햇님아 우리 중앙광장으로 가볼까?" "그래"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중앙광장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어린이집이 바로 앞에 있어서 꼬마들도 많고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오리 모양 만들어서 의자 위에 올려 두 자"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서 벤치 위에 쪼르르 올려놓았습니다. 3살짜리 남자아이가 엄마가 함께 놀다가 눈 오리를 보고는 "이거 가지고 놀아도 돼요?"라고 묻는다. '귀여운 꼬마 아이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그래~ 가지고 놀아"
"햇님아 우리는 눈사람 만들자" 눈을 뭉치고 둥글둥글 굴렸습니다. "엄마 눈 어떻게 굴려?" "엄마 하는 거 보면서 해봐. 그리고 눈, 코, 입은 어떻게 할 건지 재료 찾아와 볼래?" "응"
둘 합작품이 된 눈사람을 피아노 학원 앞으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렇게 사진으로도 남겨두고 말이지요.
학원으로 들어가는 꼬마들이 "눈사람이네요?" "어떻게 만들었어요?" "만져보니 딱딱해요." "위에 모자는 어떻게 만들었어요?" 어린아이들의 세계는 역시 동심의 세계.
우리 마음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깨끗하고,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에는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처럼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