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겨울

by 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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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이 무서운 사람. 항상 훈기가 도는 따뜻한 집 안에서 바깥에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훅 끼쳐 오는 차가운 공기, 걸을 때면 몸을 자꾸 웅크리게 만드는 매서운 추위, 미끄럽고 딱딱하고 날카로운 언 바닥. 내 몸이 추위를 유난히도 어려워했다. 바깥에 잠깐만 나가도 눈에 띌 만큼 몸을 떨었다. 한 번도 겨울을 편안하게 보내본 적이 없었다. 밤이 길어져 금방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덜덜 떨며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 겨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겨울을 무서워하게 됐다.


되도록 외출하지 않으며 겨울을 외면하듯 흘려보내다가 하루는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물이 다 떨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평소 같으면 배달로 주문을 할 텐데 그럼 당장 받을 수 없었다. 자기 전에도, 자다가 잠깐 깼을 때도, 기상했을 때도 꼭 물을 마셔야만 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외투 위에 외투를 하나 더 입고, 바지도 두 겹을 껴입은 채로 현관문을 열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오피스텔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했다. 고개를 숙이고 외투깃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걷다가 문득 눈이 쌓인 화단에 눈길이 갔다. 동그랗고 단단하게 뭉친 눈덩이가 가로등 빛에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양새에 나도 모르게 눈덩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만져보니 차갑고 매끄러웠다. 눈이 이렇게 매끄러울 수가 있나 싶어 손에 들어보니 그건 눈이 아니라 흰돌이었다. 화단에 두기에 어색할 만큼 큰, 내 손바닥만한 흰돌이 거기 있었다. 흰돌은 내 손 위에서도 여전히 빛을 받아 반짝였다. 크기가 큰 만큼 묵직한 무게감이 손 안에 느껴졌다. 흙이 한 번도 묻은 적 없는 것처럼 밝고 맑은 흰색이었다. 흰돌이 있던 자리에는 돌의 무게 때문에 쌓여 있던 눈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흰돌을 바라보다가 외투 주머니 속에 깊이 넣었다. 흰돌과 차가워진 손이 외투 안에서 금방 따뜻해졌다. 영원히 녹지 않는 눈덩이를 갖게 된 기분이었다. 이로써 겨울을 덜 무서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며 물을 사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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