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정오. 점심으로 열무김치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 밥을 한 공기 먹고 난 뒤 식기를 싱크대에 넣어두고 맨바닥에 눕는다. 찬기가 반팔티와 반바지 바깥으로 드러난 맨살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 손을 가지런히 호흡하는 배 위에 포개어 놓는다. 다리를 편안히 뻗으면 맨발의 뒤꿈치가 바닥에 닿는다. 햇볕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적시고 반쯤 열어둔 창문으로 불어온 바람이 자장가처럼 나른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매미가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시간. 잠이 드는지도 모르는 채 깜빡하는 순간 잠에 빠진다.
한여름인데도 검은색 셔츠 위에 검은색 자켓을 걸치고 긴 바지를 입은 내가 아무도 없는 공원에 홀로 서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드러난 뒷목에 따가운 햇볕이 찌르듯이 쏟아진다. 선 채로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어 바닥에 솟은 작은 풀을 쏘아본다. 공원은 아주 넓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신발의 앞코보다도 낮은 풀만 무성하다. 나는 언제부터 서 있던 걸까. 내 발 아래에도 풀이 있을까 싶어 한걸음 옮기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고 곳곳에 풀이 있어 발을 옮겨 놓을 데가 없다. 나는 풀을 내려다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그건 얼마든지 가능할 것만 같다. 바람이 불어와 풀이 동시에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깜빡 잠에서 깬다. 숨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이마에 땀이 고슬고슬 맺혀 있다. 집 안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고 바닥에 누운 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천장이 유독 높고 멀게 보인다. 평생을 잠들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생경하다. 꿈속의 공원에 다녀온 시간이 아주 짧은 것 같은데도 이생이 가짜 같다. 누운 채로 머리부터 어깨, 다리, 발을 차례로 감각한다. 바람이 불어오듯 바닥에 닿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