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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Mar 02. 2022

털털이가 사라졌다

21년 12월 5일. 맥스와 아침 산책을 나섰던 털털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켜켜이 쌓여가고 불길한 상상이 여럿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털털이인데. 우리 가족 말고는 절대 경계를 풀지 않아 매일 찾아오는 할머니에게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털털이인데.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걸까. 털털이가 사라진 그날 오후부터 찾아 나섰다. 맥스와 꼬물이를 데리고 가면 냄새라도 맡아 찾지는 않을까 해서 온 동네를 다녀보았다.     

     

털털이를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며칠 동안 사람이 다닐 수 없는 인적 드문 곳이나 산속을 찾아 헤맸다. 질척한 물논에도 다녀보고, 온몸에 가시가 붙도록 덤불을 헤쳐도 보고, 혹시라도 사고를 당했나 싶어 길가에 열심히 흔적을 찾아봤다. 아무 데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괜히 꼬물이와 맥스를 데리고 다녔다가 꼬물이는 낮은 키 때문에 덤불에 쓸렸는지 눈이 조금 다쳤다.     


    


아빠는 트럭을 몰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수소문을 해보았고, 아무도 목격자가 없었다. 털털이는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산속 깊은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산속을 뒤졌다.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털털이를 염려하고 그리워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환하게 맞이하던 털털이가 아른거린다고 부모님이 말했다. 어쩔 땐 털털이가 보인 것 같아 뒤돌아본다고도 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가 말했다.

‘예기치 못하게 오더니 예기치 못하게 가나 보다.’     


우리는 저마다 담담하게 털털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내일 아침 거실 창문 밖으로 빼꼼히 털털이가 보였으면 좋겠다. 늘 있던 그 자리에서.     



털털이는 어디에 있을까.

털털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처음엔 이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꼭 찾고 싶었다.     


아직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더 많아, 털털아.

내일 아침에도 너를 찾으러 갈게. 너를 처음 발견해 구조해 왔던 날처럼 네가 쓰러져 있다면 달려가서 안아 올게.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만, 조금만 더 찾았다.

그러고 2주쯤 지난 한밤중이었다. 창밖으로 눈이 소복소복 쌓여가는 게 보였다. 어두운 밤이었는데도, 새하얀 눈에 달빛이 반사되어 하얗게 보였다. 문득 생각했다. 털털이가 이 추위를 고생스럽게 견디는 것보다 죽어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쓸쓸한 겨울이었다. 이렇게 문득문득 떠오르겠지. 거의 2년의 세월을 우리와 함께한 털털이가.     


슬프지 않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죽음을 마주하거나 이별을 겪게 되었을 때. 털털이가 사라지고 난 뒤 생각했다. 시골에서는 죽음을 담담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인다고.     

시골에 살다 보면 생각보다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많다. 어떤 생명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피고 지고, 자라고 시들고 마침내 죽음을 맞는다.

우리 집으로 예기치 않게 찾아왔던 가족은 올 때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한 때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픈 털털이를 데려오면서 한편으로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남아 건강이 좋지 못했으니까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고. 그런데 생각보다 털털이는 회복력이 좋았다. 점점 더 건강해져서 즐겁게 우리와 함께했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이렇게 털털이를 떠나보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언젠가 시골 개들의 수명이 5년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병들면 버려지고, 집을 나가도 찾지 않고, 이유 없이 버려지는 개들이 많았다. 돈이 안 되는 개는 왜 키우냐는 소리를 듣고, 유난스럽다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그다지 좋은 보호자는 되지 못했다. 미안함이 묵직하게 가슴을 누른다.     


할 만큼 했어. 아니야, 더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좋은 가족이 되고 싶어. 아니, 충분히 좋은 가족이었어. 양가적인 마음이 혼란스럽게 마음을 뒤흔들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되었겠지. 우리는 이별했을 거야. 생각보다 우리는 좀 더 오래 같이 있었고, 또 생각보다 우리는 빨리 이별했어.     


아빠는 청소를 했다. 털털이의 흔적을 치우고 정리를 했다. 내가 털털이가 그립다 말했더니 아빠는 빨리 잊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건 아빠가 더 어른이어서 그런 걸까?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싶어서 털털이 얘기를 더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얘기를 꺼낼 때마다 아팠다. 털털이는 우리와 있을 때 행복했을까?     


물음이 아프게 마음을 찌르기도 했지만, 털털이를 찾아다니면서 계속 털털이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렸다. 우리가 처음 털털이를 발견했던 산속 수렁에도 찾아가 보고, 털털이가 다녔을 만한 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진흙 발로 걷다가, 혹은 털털이를 찾으라고 잠시 풀어놓은 맥스와 꼬물이가 산을 넘어 사유지로 들어가는 바람에 낑낑대며 가시나무를 헤치고 넘으며 따라가기도 했다. 온통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다니느라 옷이 질 정도였다. 가시가 온몸에 박혔고, 울음이 나올 것 같다가도 동생과 나는 서로의 몰골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털털이는 행복했을까?

우리는 털털이 덕분에 더 행복했다. 2년뿐이었지만(어쩌면 2년 동안이나) 털털이는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더없이 큰 선물이었다. 털털이는 우리에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큰 행복이었다.     

산을 헤매고 나서 털털이도 우리와 만나 행복했을 거라 믿었다. 우리는 2년 동안 쌓은 추억이 생각보다 많았다. 같이 있어 행복하다고 우리는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했으니까. 강아지들의 눈을 보면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기란 어려우니까 우린 서로에게 더없이 솔직해졌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애정을 숨긴 적이 없었다.     


털털아, 그래도 좀 더 많이 너를 쓰다듬어줄 걸 그랬다. 너의 사랑스러움과 애정에 우리가 더 많이 행복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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