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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Feb 22. 2022

태풍 속에 구조된 열두 마리의 멍멍이들

지난번에 보았던 검은 개가 새끼를 낳은 것 같다고 아빠가 말했다. 폐건물이 된 서당 근처에서 서성이며 사람들을 향해 짖고 있던 개를 할머니들이 보았다고 얘기해주었다. 하필이면 태풍이 분다는 예보가 있었고, 아빠는 검은 개와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태풍이 불던 날, 서당의 아궁이가 있는 자리에서 무려 열한 마리의 새끼와 함께 검은 개를 구조했다(좁은 아궁이에서 다 구하기까지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검은 개는 그새 안쓰러울 만큼 앙상하게 말라 뼈가 드러나 있었고 곧 쓰러질 것같이 힘이 없어 보였는데도 무려 열한 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살린 어엿한 어미 개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 검은 개를 ‘어미개’라고 불렀다. 한동안은 열두 마리의 멍멍이들을 우리 가족이 보살펴주며 지냈다고 한다(나는 서울에 있어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기만 했다).     

내가 집으로 가자 어미개는 나를 보고 경계하듯 한번 짖더니 금세 우리 가족인 걸 알았는지 나를 향해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보양식이라고 닭을 고아 먹였다는데도 만져보니 뼈마디가 두드러질 만큼 앙상해져 있었다.     

안쓰러워 여러 번 만져주니 얌전히 손에 기대어 있는 어미개를 보니 또 이렇게 착한 개를 누가 버렸을까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활기 넘치는 열한 마리의 새끼들을 다 살려냈다니 너무 기특해서 우리는 매번 어떻게 저 애들을 다 살렸을까. 하는 말을 많이 하곤 했다.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열두 마리의 개를 데려갈 사람을 찾느라 아빠가 동분서주했다. 다행히 모두 데려갈 사람이 나타났고 마지막에는 ‘꺼멍이’라고 불렀던 암컷 강아지 한 마리만 집에 남아 있었다.     


코에 늘 흙이 묻어 있던 꺼멍이


꺼멍이는 무척이나 활달하고 겁이 없어서 털털이에게 달려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우리 집 세 마리의 강아지들은 새끼들을 대하기 어려워해서 자기에게 다가오면 곧잘 도망치곤 했다.     


그렇게 함께 행복한 때를 보내고 다 입양을 보낸 뒤에 생각했다. 시골 개들 대부분이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 버려지면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나곤 한다(우리 집 개 세 마리도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고, 잦은 가출의 이유였다. 어미개가 낳은 새끼들을 보니 부정할 수 없이 아빠가 맥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버림받은 개는 또 생명을 낳지만 대부분은 버려지기 일쑤였다. 시골에서 유기견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봤다. 유기견 중 안락사를 시키는 수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체감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산에서 떠돌던 털털이를 구한 일도 있지만, 유기견이 나타날 때마다 인적 드문 고갯길에 상자를 버렸는데, 강아지들이 여럿 들어 있거나, 어느 날 갑자기 산에서 낯선 개 한 마리가 나타나면 그날은 그 길로 가지 않는 웬 낯선 차가 보였다고 한다.     


누군가는 계속 인적 드문 시골에 찾아와서까지 개를 버리고 간다. 도롯가에 버려진 어느 개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하루 이틀을 견디고 있어 결국 아빠가 데려와 유기견 센터에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 개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고, 먹이를 주어도 입을 잘 대지 않았다. 그저 숨기만 바빴는데 누가 봐도 귀하게 키운 걸 알 수 있을 만큼 털에 윤기가 흘렀고, 예쁜 개였다. 그런데 왜 그 개는 그 도롯가에 버려져 있었을까.     


모든 개의 사연이 궁금했다. 어미개는 이전에 어떤 주인과 함께 살았을까. 그동안은 어떻게 살아오다가 이 마을까지 흘러들어 오게 된 걸까. 구멍가게 하나 없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 버려진 개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개를 좋아해서 많이들 길렀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개를 버리게 된 걸까? 어쩌면 가족이 아니었던 것일까.     


피부병이 걸려 버려진 어떤 개는 마을을 떠돌다가 운 좋게 한 가정에 정착해 살아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무얼 먹고 사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 없이 떠돌다가 사라지곤 한다. 구조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기견을 모두 수용할 만큼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고,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개를 계속 버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유기견을 입양하는 사람은 드물고, 시골에서는 중성화하는 비율도 적으니 개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까운 병원이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 병에 걸려 버려지는 일이 빈번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는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계속해서 내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나를 곧잘 잠식시키고 마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혼자 하고 싶지 않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개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너무도 잘 아는 동물이었다. 버려졌지만 자신에게 아주 작은 호의만 내비쳐도 금방 사람에게 호의를 갖는 맑은 눈을 갖고 있다. 우리가 개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쉬운 일이다. 개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주지만 우리의 손이 거둬졌을 때, 더 큰 절망을 겪을 것이다.


아마 오늘도 어디선가 버려진 자리에서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개들이 있을 테다. 그 모든 개들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주는 이가 찾아오기를. 그리고 서로가 만나는 순간, 누군가가 더 큰 애정을 되돌려받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길에서 헤매는 모든 이와 유기 동물들이 우연처럼 만나서 운명처럼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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