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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Feb 14. 2022

검은 개가 나타났다

나는 지금까지 버려진 검은 개를 세 마리나 보았다. 색이 검다는 이유로 버림받거나 입양을 꺼리는 블랙독(Blak dog) 증후군은 내 눈앞에 나타나 어른거렸다. 버림받은 검은 개들이 이 조그만 시골구석에 세 번이나 나타나다니.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우리 맥스도 덩치 큰 검은 개라 할머니들이 무서워할까 늘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검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까 한다.     


마을에 검은색 암컷 유기견 한 마리가 나타났었다. 닳아 해진 하늘색 목걸이를 한, 다리가 꽤 길쭉한 검은 개였다. 그 개가 나타난 이후로 마을에 있던 수컷 개들이 단체 가출을 감행했다. 이후로 검은 개는 며칠 동안 다섯 마리 이상의 개를 거느리고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중엔 우리 맥스와 꼬물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출해놓고 사과밭에서 낮잠을 즐기는 개린이들. 가장 왼쪽이 꼬물이.


우리는 몇 번이나 잡으러 다녔지만, 결국 맥스와 꼬물이는 며칠 굶어서 배가 고파서 돌아왔다. 치열하게 다투고 다녔는지 꼬물이의 얼굴엔 상처가 가득했다.     


그 뒤로 한동안은 검은 개는 다른 개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을을 배회하며 지냈다. 그러다 좀 시간이 흐르자 다시 혼자가 되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마을을 기웃거리곤 했다. 대부분 자취를 감춰서 어디서 지내는지 무얼 먹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검은 개는 곱슬거리는 장모에 다리가 길쭉하니 예뻤다. 다리가 긴 탓에 걸어 다니는 모습이 겅중겅중 걷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검은 눈빛이 순하고 예뻤다. 하지만 버려진 이후로 사람에게 많이 쫓긴 탓인지 나를 경계하며 다가오진 않았다.     


검은 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또다른 말이 있다. 윈스턴 처칠이 “나는 평생 검은 개(Black dog)와 살았다.”라고 말하며 우울증을 검은 개에 비유한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우울증을 검은 개에 비유한 뒤로 검은 개에 부정적인 인식이 깃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검은 개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이 즐비했던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우울증과 평생 함께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우울을 사랑하기로 했다. 내 ‘검은 개’(중의적)는 사랑스러웠다.     


맥스가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검은 개(우울증)에게 쫓기고 있었다. 정말 검은 개였던 맥스는 덩치가 크고 검어서 무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겁쟁이인 데다 불안해하고 사람이 없으면 못 견디는 개였다.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꼬물이 눈치를 보고 못 이기며 늘 꼬물이에게 의지한다. 우리 집 검은 개는 사랑을 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검은 개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고, 똑같이 사랑스러운 개였고,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인 그저 개였다. 우울도 어쩌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수많은 감정 중 하나였으나 어떤 시인의 말처럼 '빠져 죽을 만큼 깊어서' 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맥스가 있어서 검은 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이 검은 개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검은 개에 대한 루시드 폴의 멋진 곡이 있어 가사를 일부 적는다.     


유난히 추워진 오늘 밤

검은 개 한 마리 나를 바라보네

밤처럼 까만 눈동자에

어릿한 두 줄기 달빛이 떴구나

눈물 말라붙은 얼굴

낮은음자리처럼 곱게 말린 꼬리

가지처럼 야윈 몸

낙엽처럼 마른 등

도망치듯 사라진 계단 위로

부는 칼바람보다

더 내가 두려웠는지도 몰라

혼자 울고 있지 말고

같이 울자 우리집에서     

  - 루시드 폴, <검은 개>


이 가사를 보면 그 개가 떠오른다. 그리고 잠시 보이지 않았던 검은 개는 태풍이 불던 날, 간신히 구조됐다. 무려 열한 마리의 갓 태어난 강아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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