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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Feb 09. 2022

내가 살던 곳이 이렇게 예쁜 곳이었다니

매일 산책을 나서면 그림자가 짧아지는지 길어지는지, 해지는 시각의 빛과 사물들의 색깔이 어떤지, 계절에 따라 어떻게 나무와 풀이 변해가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집 안에만 박혀 살던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어느 날은 강아지들이랑 놀며 마당에 주저앉아 아빠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사이에 아빠는 마당을 손수 아빠만의 정원 철학으로 가꾸고 있었다. 아빠 이건 뭐야? 나는 어린애가 된 기분으로 마당에 있는 모든 풀과 나무에 대해 물었다. 그러면 아빠는 나무마다 사연을 말해주곤 했다. 이건 어디서 가져왔고 산에서 손수 캐왔으며, 이 조약돌들은 강가에서 주워 왔다고.     

마당에 앉아 있으면 주변이 온통 논과 밭, 그리고 앞에는 숲이어서 말 그대로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바람이 부는 속도, 햇볕이 내리쬐는 방향, 새가 지저귀는 소리. 저절로 차분해지는 풍경들이다. 사르락사르락 집 맞은편 숲에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잘 들려서 아빠에게 물었다. 저건 무슨 나무야? 아빠가 은사시나무라고 말해줬다. 사시나무 떨듯 하다 할 때의 그 사시나무. 나는 모르는 게 참 많았다.     


털털이는 사료를 조금씩 남기곤 했는데 어느 날은 털털이 사료를 훔쳐먹는 새가 나타났다. 개가 무섭지도 않은지 매일 찾아와 사료를 훔쳐먹고 달아나는 새는 날이 갈수록 통통해졌다. 파란 무늬가 예쁜 새였다.     


밤산(밤나무 산)으로 산책을 하는데 6월 무렵에 동생이 산 깊숙이 들어가서 황홀한 광경을 봤다.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무덤 주변에 일부러 금계국이 피도록 심어놓고 가셨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는 꽃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비가 온 뒤에는 무지개가 산에 걸려 있어 가까이서 보려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금세 사라져버려서 아쉬워하며 내려왔는데, 내려오는 길에 무지개보다 비에 젖은 꽃들이 더 예쁘다는 걸 알았다.     


봄에는 매화가 제일 먼저 피고, 배꽃이 참 예쁘게 핀다. 온갖 꽃과 나무의 이름을 하나씩 더 알아갔다. 가을에는 단풍과 억새가 예쁘고 눈이 오면 그것대로 멋지다. 실은 평생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긴데 강아지를 키우고 나서야 이런 풍경들을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매일 산책을 나서면서 강아지들이 내게 알려주었다. 시골 풍경이 이렇게 다채롭다는 것을.     

요즘은 밤산에서 꼭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려 유심히 나무를 바라보다가 겨우 딱따구리를 찾았다. 생각보다 정말 조그만 새였다. 그렇게 작은 몸으로 나무를 뚫는구나. 죽은 밤나무에는 딱따구리가 잘 찾아온다고 한다.


오늘도 노을이 지는 시간에 산책을 해야겠다. 밤산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고 오는 게 언젠가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되었다.     


지루하고 적막한 시골 풍경 얘기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모두 평화로움이 찾아오기를. 오늘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씻겨나가길 바란다.     


모두 안녕, 하시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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