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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Jan 20. 2022

털털이는 과수원에 출근합니다

털털이는 아빠 껌딱지였다. 어디든 아빠가 가는 곳이면 졸졸 따라가기를 좋아했다. 털털이는 아빠의 옷차림새만 보고도 사과밭에 가는지 다른 곳에 가는지 알아차릴 정도로 영리했다. 아빠가 밭에 일하러 갈 차림을 하고 나오면 털털이는 먼저 신이 나서 달려갔다. 늘 혼자 사과밭으로 나서는 아빠에게도 출근길 동료가 생긴 셈이었다.


털털이는 아빠를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 걸까. 추위에 떨던 순간에, 앙상한 몸에 박힌 커다란 진드기를 떼어주던 손길을 기억했던 걸까.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처음부터 아빠를 보고는 살며시 꼬리를 흔들었다고 했다. 아빠를 그렇게 반기다가 언젠가부터 아빠가 사과밭으로 나설 때면 따라서 출근을 했다. 아빠가 털털이를 떼어 놓으려고 트럭을 타고 쌩 하고 달려나가 보아도 아빠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서 나중에는 같이 밭으로 가는 일이 많아졌다.     

   

털털이는 사과밭 여기저기 냄새를 맡다가 한편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오기도 하고 낯선 사람이 사과밭에 오면 짖기도 했단다. 아빠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기를 싫어했는데 그 덕분인지 털털이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영리하고 (아빠의 표현에 따르면) 죄를 저지르지 않는 똘똘한 강아지였다. 털털이는 산에서 들개처럼 살아서인지 개집이나 목줄 하는 데 영 적응을 못했다. 결국 마당을 자유롭게 누비며 살게 되었는데 혼자서는 집 밖으로 잘 나서지 않아서 늘 맥스나 꼬물이 근처에, 아니면 우리 가족의 근처에 머물곤 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개집을 마련해 주어도 풀숲에 숨어 살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겁이 나거나 잠을 잘 땐 풀숲에 잘 숨어 있곤 했다.     

그리고 털털이가 얼마나 침투력이 강했냐면 절대 집 안으로 개를 들이지 않겠다던 부모님의 벽이 허물어질 정도였다. 어느 날 거실 한쪽에 신문지와 펜스가 떡하니 생겼다. 그리고 매일 저녁 털털이의 일과는 애처롭게 거실 창문에서 자기를 들여보내 달라 눈빛으로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때만큼은 꼭 고개 각도를 약간 기울이며 처연한 눈빛을 하는데 몇 시간이고 그대로 앉아서 나 좀 들여보내 주세요, 말하는 듯한 털이(이렇게 더 많이 불렀다)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가장 늦게 들어온 막내였지만 항상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오고, 집을 열심히 지키고 말을 잘 듣는 영리한 개라 아빠의 예쁨을 독차지했다. 아빠와 털털이는 단짝이 되었다. 털털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 단연 아빠였을 거다. 나도 아빠와 털털이에 대해 말하던 그 순간이 즐거웠다. 아니, 왜 데리고 왔냐고 타박하던 사람은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아빠는 털이를 예뻐했다.


강아지는 때로 접착력 떨어진 테이프처럼 서먹했던 가족을 단단하게 이어준다. 털털이만 보면 모두 웃음이 나왔다. 강아지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많이 웃고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함께한 기억이 쌓이고 이야기의 접점이 생겼다. 우리 가족의 중심에는 늘 강아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던 털이와 그때의 웃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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