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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Jan 14. 2022

무덤 산책


우리의 산책로는 밤산이었다. 집 주변에는 이웃이 없고 온통 논밭과 산만 있는데, 항상 산책 코스는 산으로 가서 강아지들이 맘껏 뛰놀게 하곤 했다. 낙엽과 밤송이가 다 떨어져 휑한 겨울에는 더욱 강아지들이 놀기가 좋다. 어디든 산 구석구석을 누비는 맥스와 다르게 밤송이 가시를 싫어하는 꼬물이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장애물(밤송이) 뛰어넘기를 하면서 신나게 달린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시골 마을이라 사람이 산책할 산책로도 마땅히 없어서 거의 농로로 산책하곤 한다. 가끔 목줄을 하고 나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밤산으로 향한다.


산에 올라가면 우리나라 어디든 그렇듯 볕이 드는 좋은 자리는 이미 선점하신 분이 계신다. 무덤 말이다. 그래서 산책할 때마다 무덤 근처에 잠시 주저앉아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모습이나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괜히 무덤 주인에게 속으로 혼잣말을 해본다. 오늘도 또 왔습니다. 풍경이 예쁘네요. 저희 집 개들이 너무 뛰어놀지요. 매일 인사를 드리니 조금만 예쁘게 봐주세요.


서울에 살다, 한적한 시골에 다시 내려와 지낼 때마다 자주 떠올리곤 하는 말이 있다. 심심한 천국과 재밌는 지옥 중에 어디에 살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하겠지만 굳이 서울까지 상경해서 조금은 꿈을 키워오다가 서울살이가 버거워서 내려온 나에게는 참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무덤 옆에 털썩 주저앉아 오늘도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여기는 심심한 천국은 아니고 그냥 심심한 지구 같아요. 사실 서울도 심심한 날이 더 많았어요. 심심함을 느낄 만큼 여유 없이 피곤해서 그렇지.


나만큼 맥스랑 꼬물이도 무덤가를 좋아하는데 깔끔하고 푹신푹신한 잔디 덕분이다. 이처럼 산책하고 사색하기 좋은 데가 또 없다. 꼭 해가 지기 전에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무덤 옆에 패딩(산책용)을 벗어 놓고 돗자리 대용으로 쓰며 앉으면(그럼 우리 꼬물이가 제일 먼저 앉는다) 그곳이 명당이다.


나는 열다섯 살때부터 애늙은이였는데, 지금도 좀 그렇다. 등산은 끔찍이 싫어하고 못하지만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좋다. 야트막한 밤산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찍은 사진 풍경을 보면 4~50대 어른들이 해놓는 카톡 프사 같다. 하지만 좋다.


일상이 주는 지루함과 안정감이 좋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강아지들과 함께 해가 넘어가는 걸 보는 게 내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반복되는 하루가 쌓이다 보면 해가 넘어가는 걸 보는 이 시간이 인생에서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무용하고 쓸쓸하고 덧없는 시간들이.


무덤으로 산책하는 게 난 좋다. 그러고 보니 산 자들보다 죽은 이를 더 많이 만난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무덤을 이렇게 자주 찾아가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니.

지금 누릴 수 있는 이 고요함을 충분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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