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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Jan 14. 2022

유박 비료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키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꼬물이가 성견이 되기도 전에.

맥스와 꼬물이를 키울 때 가장 큰 위기가 있었다. 사과밭에 유박 비료를 뿌려놓은 것을 모르고 산책을 갔다가 둘이 유박 비료를 먹어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위험천만한 일이 있었다.


동물병원을 데려가려고 동생이 전화로 문의를 했다(우리 지역에는 없었다). 다음 날 데려가려고 했지만 아빠와 동물병원을 데려가느냐 마느냐로 언쟁이 붙었다. 아빠 몰래 그날 밤, 맥스와 꼬물이를 데리고 방으로 와서 재우려다가 걸려서 쫓겨났다.


아니, 꼬물이와 맥스가 아픈데.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원망스러운 말을 꾹 눌러 삼켰다. 대신 내가 바깥으로 나갔다. 어두운 새벽녘 내가 개집으로 들어갔다. 그 밤 전부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다음 날, 엄마가 조퇴를 하면서 겨우 강아지들을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한시름 놓았다. 맥스는 아픈데도 불안한지 여러 번 수액 맞는 링거를 끊어버렸다. 꼬물이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푹 숙이고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얌전히 있었다.


병원을 다녀오고 난 후 약을 먹이고 몇 날 며칠을 돌보고, 나는 개집을 내 방인 양 더 많이 들락거렸다.

얌전히 묶어서 집 마당에 키우려던 맥스를 매일 마당에 풀어주는 나를 아빠는 너무 풀어놓고 키운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강아지 시절에는 다행히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풀려 있는 덩치 큰 검은 개는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위협적으로 보이니까. 아무리 겁이 많은 아이라 하더라도 그건 가족만 아는 사실이니.

나는 마냥 자유롭게 키우고 싶고, 아빠는 개는 개답게 키우고 싶어 했다(아빠가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런 가치관 때문에 좌충우돌이 많았지만 가장 큰 갈등은 아마 이때였을 거다. 강아지들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려갔던 이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아빠가 원망스러워져서 방에 처박혀 엉엉 울었다. 부모한테 혼나 억울한 열 살짜리 애처럼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펑펑 운 건 정말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꼬물이와 맥스는 다행히 건강하게 나아서 잘 자라주었다. 그런 큰 위험이 있은 뒤로 유박 비료는 우리 동네에서 자취를 감춘 듯했다. 유박 비료는 사료와 비슷한 냄새가 나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먹고 죽는 일이 많다 한다. 치사율도 굉장히 높다. 다행히 그런 일이 두 번은 없었지만 늘 조마조마하다. 병원도 마음대로 못 데려다주는 보호자라서.


나는 아직 울타리 있는 집도 못 마련해주는데. 동물병원 하나 혼자서 데려갈 수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지 않아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자. 어쩌면 그 일이 내 삶에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난 강아지들 덕분에 살고 싶어졌다. 아주 잘 살아서 우리 강아지들 행복하게 해줘야지.


내 우울증은 나를 학대하고 방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내 강아지들에게 망설임 없는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감정까지는 막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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