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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Mar 04. 2022

크리스마스이브의 손님

이브 전날, 잠시 휴대폰을 놓고 갔던 아빠의 폰이 자꾸 울려서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집 개가 닭을 잡아먹고 있다는 전화였다. 놀랐지만 우리 집 맥스와 꼬물이는 집에 얌전히 있었고, 전화했던 분은 집 나간 털털이가 아닌가 해서 또 강아지의 생김새를 알려줬지만 털털이가 아니었다.

동생이랑 나는 그래도 털털이였으면 차라리 반가웠겠지? 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 저녁. 크리스마스이브는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아빠 곁에 다가왔다. 생김새를 보니 아무래도 전날 닭을 잡아먹으려고 했던(잡아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강아지였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손님


털이 복슬복슬하고 영양 상태도 좋아 보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장난기 많은 활발한 강아지였다. 덩치는 꽤 크지만 하는 행동이 아직 어려 보였다.     

사료와 닭고기를 좀 챙겨주며 놀아줬더니 사람에게 친화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생긴 건 꼭 곰처럼 생겨서 온몸은 까만데 가슴에만 흰 털이 있었다. 반달곰처럼 생겨서는 하는 짓이 귀여웠다. 

우리는 달곰이라고 부르자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달곰이는 털털이의 빈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아빠가 여기저기 알아보니 한 달 전쯤부터 산에서 나타났던 강아지라고 한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살던 큰아빠가 못 보던 개가 나타나 사료도 주고 사과밭 창고에서 돌봐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목줄을 풀고 내려와 소동이 벌어졌던 거였다. 

누군가 또 산에 버리고 간 걸까. 낯선 차량이 들어선 이후로 갑자기 나타난 개라고 들었다. (산어귀를 향하는 골목은 늘 드나드는 차가 같아서 낯선 차가 오면 쉽게 눈에 띈다.)     


달곰이는 금방 우리 집을 떠나서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 돌아와 밥을 얻어 먹고 갔다. 크리스마스에만 잠시.

며칠을 돌아다니며 행방이 묘연하다가 다시 큰아빠의 사과 창고로 찾아왔다고 한다. 아빠가 찾아가니 여전히 사람을 너무 좋아하며 반기더란다.     


12월에 털털이를 잃어버리고 담담한 체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슬픔에 겨웠다. 예기치 못한 달곰이와의 만남이 털털이를 떠오르게 하기도, 혹은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는 듯도 했다.     


아직도 털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디에 있는 건지 간절히 알고 싶다. 살아서 다시 돌아와 주었으면 하면서도 이 추운 겨울에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기도 한다.     


털털이가 있는 동안 털털이를 알아서 행복했다. 산속에서 비를 맞고 다 죽어가는 생명을 데려와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털털이가 사람을 무서워할 때마다, 우리 가족에 손에 무언가 쥐고 있으면 무서운지 슬그머니 피할 때마다 안타까웠지만 그런 털털이가 서슴없이 마음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꼭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마음이 예쁜 아이가 우리 가족이 되어주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이별을 겪고 나면 한동안은 잘 못해줬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곤 하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았다. 강아지들도 잠을 잘 때 행복한 기억을 꿈으로 꾼다고 한다. 어디엔가 있을 털털이도 행복한 꿈만 꾸었으면 좋겠다.

어디에 있든 털털이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기를.          




후일담.

지금은 달곰이를 우리가 돌봐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애들 둘이 달곰이와 성격이 도통 맞지 않아서 합사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어 노력하는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천방지축 힘 센 꼬마 같은 달곰이 녀석이 생겨서 일상이 또 다채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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