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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Mar 15. 2022

마지막 이야기

사적이고 심심한 일상을, 나의 강아지들과 시골에서 사는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글로 쓰자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가깝고 소중한 이들과 나누거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나도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수도 있는,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굳이 내보일 생각은 없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고, 나의 팔불출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강아지들 자랑만 하다가 끝날지도 몰라.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점들은 누군가 날카롭게 파고들면 어쩌지? 나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 지레 겁먹을지도 몰랐다(그 주인에 그 개들이라고, 우리 집 개들의 겁은 주인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하지만 인적 드문 시골길에 계속해서 버려지는 개들과 만나고, 털털이를 잃어버리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털털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시골길에 버려지는 강아지들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나를 여기에 데려다주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털털이를 잃어버리고 얼마 후에, 털털이와 닮은 개가 도롯가에 버려진 일이 있었다. 아빠가 보내준 사진을 스치듯 본 순간, 털털이가 아닐까 기대했을 만큼 잠시 희망을 가졌었다.     



털털이와 닮은 유기견


하루이틀, 버려진 그 자리 그대로 위험한 커브 길에 계속 머무르던 개는 아빠가 구조해 유기견 센터로 보냈다. 잠시 집으로 데려왔을 무렵, 강아지는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경계하며 숨었다. 털에 윤기가 흐르는 깔끔한 모습이 누군가 귀하게 키웠을 게 분명했지만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도롯가에 홀로 남겨졌다.     

너는 주인이 떠난 차의 뒷모습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을까.


밤을 지새우며 이틀 동안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주인이 와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먹이도 거부하던 상처 입은 개를 바라보면서 시골길에 개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간절하게 말하고 싶었다.     


어느 어두운 고갯길에, 사람이 없는 산속에,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롯가에 개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행복한 일상을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공유하긴 하지만, 그 이면의 어두운 사정들도 사람들이 더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내가 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강아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주인으로서 책임이 부족한 행동들이 많았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내가 조금 편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대부분 어느 정도 체념하고 만 행동들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손님이었던 달곰이는 한차례 가출을 했다가 다시 산 중턱에 있는 큰아빠의 사과밭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산속에 홀로 지내며 있는 달곰이가 신경 쓰여서 산책을 나서는 길에 달곰이를 보러 갔다가 결국에는 눈이 내리던 추운 날, 달곰이를 데리고 내려왔다.     


달곰이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기억이라곤 없는 듯, 쾌활하고 장난기 넘치고 활발했다. 하지만 내가 집으로 떠나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거나, 다리를 꼭 끌어안는다.     


어느 날은 지나가는 차를 우두커니 보고 있는 달곰이를 본 적이 있다. 혹시 저런 차를 타고 왔던 걸까? 생각했다. 낯선 차가 산속으로 가는 걸 누군가 본 뒤에 나타난 달곰이었으니까.     


    

비에 젖어도 신난 달곰이와 앞서가는 꼬물이


우리 집 터줏대감인 맥스와 꼬물이는 달곰이를 달갑지 않아 한다. 꼬물이는 활달하고 자기보다 덩치 큰 달곰이를 감당하기 어려워해서 고민이다. 맥스도 필사적으로 달곰이에게서 도망치고 있다.     


그래도 달곰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해보려 한다. 앞마당, 뒷마당 따로따로 살지도 모르지만 우리 집에 와서 살고 싶어 하는 달곰이를 보면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을 듯했다. 어느 자리가 좋을까, 아빠는 어디에 집을 지어줄지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이별의 순간을 몇 번이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달곰이를 만나는 순간, 나는 계속 강아지들과 함께 살아가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꼬물이와 맥스, 그리고 달곰이와 무엇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고 싶지만 우리의 반려견들은 늘 우리보다 빠르게 앞서 나간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까지 보듬어줘야 할 테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내가 부디 좋은 친구로, 좋은 주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새삼스러울 정도로 다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맥스의 맑은 눈을 보며, 사람을 따라 웃는 법을 배운 꼬물이를 보며, 달곰이가 꼭 껴안곤 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삶의 반대편에서 깊이 잠겨 있을 때, 나를 구원해준 존재가 너였음을 기억한다.     



비가 온 뒤, 매화가 피고 있다. 움튼 꽃들이 활짝 만개할 봄이 다가오고 있다. 맥스 꼬물이와 몇 번이나 같이 맞이한 봄이었지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여느 날과 같은 심심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네가 있는 아침을 앞으로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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