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과수원옆미술관 Jan 14. 2022

어느 날 아빠가 강아지를 데려왔다

아빠가 개를 데려왔다. 히키코모리처럼 집 안에 박혀 있는 백수가 된 지 1년째 되던 무렵이었다. 그때의 나는 답 없는 스물다섯 살 백수, 무늬만 공시생인, 한없이 늘어져 쉬고만 싶은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도 하지 못하고 수료생인 채로 고향인 시골로 내려왔다. 무작정 내려오고 나니 시골엔 일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월세를 내며 취업 준비를 하기엔 내 역량이 모자랐다. 정해진 길은… 자연스럽게 공무원 시험으로 귀결되었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부모님께는 백수가 아니라 공시생이라는 명함을 들이밀자. 하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한 달, 두 달,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일 년. 그렇게 완벽한 백수가 되었다. 방 밖으로 일절 나가지도 않는 백수가. 그런 지루한 삶이 계속되던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덜컥 강아지를 데려왔다.



아니, 웬 강아지란 말인가. 내 한 몸 건사하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낯선 첫인사를 강아지와 어색하게 나눴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강아지도 나도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가까워지지 못했다. 강아지도 낯을 가리나?

그게 나와 맥스의 첫 만남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맥스가 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낯선 집에 와서 불안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불안 행동이 생각보다 심한 듯 보였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라는 책을 펼쳤다. 나는 개를 키우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책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개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갔다. 맥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카밍 시그널이라는 게 있구나. 너는 내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구나. 겉핥기식으로나마 조금씩 알아가려고 했다.     

맥스는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 너무 순해서 이름이 ‘순돌이’였다고 한다.


‘순돌이’였던 맥스는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무더기로 쌓인 사료를 나눠 먹으며 지냈다.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만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빠가 가끔 먹이를 챙겨주러 갔었고, 내심 나를 걱정했던 아빠는 아마도 나 때문에 맥스를 데리고 오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맥스가 살기 이전에 그곳에 살았던 진돗개는 야생 멧돼지를 마주치고 겁을 먹어서 시름시름 앓다 죽은 적도 있다고 한다. 맥스는 그 무서운 산속에서 하염없이 사람을 기다렸던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산속에 갇혀서 지냈던 맥스와 방에 갇혀 살던 내 모습이 겹쳤다. 맥스는 갇혀서 불안을 얻었고, 나는 불안해서 나를 가뒀다. 나는 개를 키울 자신이 없었지만 불안 행동을 보이는 맥스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시골집 개들은 대부분 밖에 묶여서 키워진다. 우리 집 맥스도 마찬가지였다.


맥스는 겁이 많았다. 한밤중에 나타난 고양이에 놀라서 비명을 지른 적도 있고 밤마다 낑낑대서 동생과 내가 번갈아 나가서 맥스 옆에 한참 있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다. 맥스가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나는 조심스레 맥스의 목줄을 풀었다. 맥스는 그때 조금 어리둥절해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었다. 사람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고 낑낑대곤 했다. 겉으로 보기엔 덩치도 크고 까매서 무서워 보이는데 실제론 의기소침하고 겁 많고 고양이를 너무너무 무서워하는 맥스였다. 목줄을 풀고 난 뒤 맥스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땅을 디뎠다. 한 발짝, 한 발짝 떼는 조심스러운 걸음이 마치 첫걸음마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맥스가 낯설게 걷다가, 그다음에는 펄쩍펄쩍 맘껏 뛰어다닐 때까지 그런 맥스를 보기 위해 나도 집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멍멍이 식구가 생겼다. 지금은 지나치게 활발해서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말썽꾸러기 애교쟁이로 변했다.


나는 맥스 한 마리로 충분히 행복했다. 그때만 해도 강아지를 더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맥스가 오고 두 달이 지난 때였다. 아빠가 우리 두 자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한 마리 더 데려올까?”


우리는 극구 말렸다. 한 마리도 키우기 힘든데 두 마리를 어떻게 키우냐며 말이다. (사실 동생은 맥스 한 마리를 감당하는 것도 벅차서 이런저런 걱정에 운 적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강아지를 데려온다며 집에 있는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맥스와 잘 지낼까 하는 걱정 반 염려 반(걱정 100%)으로 아빠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강아지를 데려오겠다던 아빠는 차에서 웬 박카스 상자를 들고 내렸을 뿐, 어디에도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때 아빠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박카스 상자에서 너무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두 번째 멍멍이 식구 꼬물이와의 만남이었다.


사진이 없는 관계로 허접한 그림으로 대체합니다. 그림보다 더 귀여웠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