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책 리뷰 -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을 읽으며
타인의 행동을 희화화하며 비웃음짓기는 쉽다. 비난은 더 쉽다.
그러니 우리가 부던히 노력해야 할 것은 상대를 이해하기로 하는 것.
쉬운 일을 행하는 것을 노력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어렵지만 기꺼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끈기있게 밀고가야만 노력이다.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일이다.
방금 읽은 백온유의 소설 <반의반의 반>은 세대갈등에 주목했다. 어째서 대한민국의 윗 세대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고 무덤까지 가져갈 것만 같은 행동을 보이는가. 왜 그들은 변화에 그리도 보수적이고, 물질을 최상위의 가치로 놓으며 떠받기에 이르렀는가.
소설은 우리가 노인들에게 전형적으로 갖는 고정관념을 어느 한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며 대변한다. 그것도 아주 은은하게. 그들은 초패스트 산업화 시대를 겪어오며 급격한 소득격차와 부에 차등한 인간소외, 궁핍과 부유사이의 극심한 온도 차를 느껴왔다. 그 결과 자신의 존재 가치는 자신이 소유한만큼의 양으로 결정된다고 믿기에 다다르며 그것이 전부 소모되면 노화되어 병약해져버린 본인의 몸을 케어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의 자식, 그러니까 우리들까지도 그들이 갖고 있는 몫을 당연하게 상속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들 자신은 외부세계와 단 하나의 연결도 없는 것이다. 다시 또 소외될 것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마지막 생이 고립과 외로움에 도착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부를 끌어앉는 것이다. 다시말해 가장 인간적인 이유들로 그들은 보수적일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틀린 생각을 갖고 있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갖고 있는 몫으로 결정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랴. 틀린 것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짓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어떤 파장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해답까지 제시한다. 역시나 사랑밖에 없다고. 이해득실을 넘어서 무차별적인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그들 자신은 충만한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겪어왔던 그대로. 그러나 그들의 시절에는 매우 희소했던대로. 그들이 잃어버린 인간적 따뜻함을 되살린다면, 우리의 갈등은 좁혀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비난을 너머, 조롱을 너머,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타인을 이해해보기로 하는 것. 우리 모두가 속해있는 사회에서 끌어안기로 하는 것. 배제가 아닌 포용. 인간 개개인을 속속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속해있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나는 또 다시 편견이 깨지며 역시나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