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성의 힘
분명 읽었는데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흰 연기처럼 들어왔다 지나가 버렸다.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니 늘 그래왔듯 나의 속에 이 책도 작게나마 잔존할 것이다.
다른 잊어버린 책들과 달리 굳이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기억해낼 수 없음에도 그것들이 내 안에 남아있다는 것을 '흰'이라는 이미지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물, 기술처럼 구체적인 것이 아니다.
연구름처럼 만져질 수 없어 추상적인 희고 뭉뚱그려진무언가다.
우리는 그것을 특정한 사상, 인생관, 인간, 감정, 사회 등등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저마다의 추상을 쓰고 싶었던 것아닌가.
작가에게 내재된 추상이 글로 구체화되어 다시 독자의 내면으로 추상화되도록하는 것이 책이 할 수있는 가장 완벽한 기능이긴 하나, 모든 글들을 그렇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럼에도. 머리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작가의 추상이 독자의 추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때의 느낌이 지금이며 그동안 읽고 감상평을 쓰지 않았던 책들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좋은 말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되길 마련이다.
구체성없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흰 구름. 인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면서도 그렇게 쓰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