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각해 보니, 나는 졸업 후 완전히 쉬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연연하고 있던 내가 보였다. 지금까지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고 후회가 남았었다. 이제는 정신없이 달려갈게 아니라 여러 방향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탐색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의 졸업 후 계획은 '쉼'이었다. 아무런 방향도 정하지 않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다양한 삶의 가능성들을 둘러보며 미래를 열어놓는 것. 지금은 감히 상상해내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해 고민하며 꽉 막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살아낸 지난달이었다. 지금의 상태로는 도저히 원하는 미래가 없어 결론 내리기를 유예했음에도 다시 또 매몰되었던 것은 왜일까. 주변인들의 프레셔, 졸업시즌이라는 시기가 겹친 친구들의 고민상담 그리고 쉽게 '쉼'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 집단사회에서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이방인은 위협스러우니까.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의 삶을 말하는 것은 불경스러우니까. 생산에 도움 되지 않은 인간은 자본주의에 해로우니까. 그렇게 나의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 자만하여 나를 게으르고 무능력한 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우니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불안 탓일 거다.
과연 사람은 스스로 고통을 지어낸다. 당장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고 재정적 상태도 괜찮아 현재에 존재하지도 않은 고통을 미래에서라도 가져온다. 불안정한 미래를 자기 마음대로 지어내며 정말 이렇게 만족해도 되는 걸까 하며 현재의 행복에 훼방 놓는다. 다른 남도 아닌 나 스스로가 행하는 일이다. 심지어 과거에 이미 정했던 결론을 다시 현재로 가져와 정말 이래도 괜찮겠냐 다시 묻고 답을 수정하려 들게 한다.
사람은 도무지 지금만을 느끼며 행복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그래도 반항해야지. 내 삶의 기쁨을 방해하는 것들과 작별해야지.
쓰고 나니 그동안 나의 '쉼'을 방해했던 것들이 이토록 명확해진다. 활자로 분명히 적어내니 그것들은 어느새 가벼워져 저 멀리 날아가 흩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글의 좋은 기능.
나는 지금부터 '쉼'의 상태로 들어가기로 선언한다. 타인의 고까운 시선을 벗겨내고, 당당히 '쉼'을 말하겠다.
이제는 정말 쉬어야겠다. 최선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