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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ind Craft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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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24. 2020

몰입인가? 낭비인가?

문제는 생산성이야

몰입이란 한 가지 과업에 대한 집중력을 한 시간 이상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몰입에 대한 필자의 정의를 듣고난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표정이 별로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따져 묻는다.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있는데, 그것도 몰입이겠네요?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 잡고 영상만 보는데, 그것도 몰입이네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도 울컥 한다. '아니, 몰입을 내가 정의했습니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유명한 학자가 정의한 거 아닙니까! 따질거면, 그 사람 찾아가서 따지시던가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럴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같이 짜증내고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질문과 짜증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름 몰입에 대해 고민해 봤다. 그리고 몰입에 대한 연구들을 다시 정리를 해보았다. 오늘 이야기는 이런 고민과 정리정돈의 끝에 발견한 몰입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몰입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시간 낭비'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과업에 몰입한다' 혹은 '한 가지에 몰입했다'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과업이 '생산성'있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생산성있는 과업은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생산성 있는 과업은 삶의 자원을 구축한다. 건강과 같은 신체적 자원, 행복과 같은 정신적 자원, 소득과 같은 경제적 친구, 친구나 동료와 같은 사회적 자원. 이러한 삶의 자원들을 구축하는 과업에 한 시간 이상 집중력을 유지했을 때는 몰입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원을 파괴하거나, 이런 자원 구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과업에 집중했다고 해서 그걸 몰입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건 그냥 시간 낭비 한 것이다.


생산성 있는 과업의 두 번째 특성은 다른 삶의 자원 파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산성 있는 과업은 삶의 자원들 간의 최적의 균형 유지에 기여한다. 운동은 신체적 자원 구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하루종일 운동만 하는 것은 다른 자원을 파괴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은 경제적 자원 구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은 스트레스 심화에 따른 번아웃(burn-out: 탈진)을 경험하게 하고, 교우관계, 가족관계를 훼손하는 등 삶의 다른 자원들을 파괴한다.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정신적 자원 구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게임만 하는 것은 신체적 자원, 경제적 자원, 사회적 자원 구축을 방해할 뿐 아니라,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것 하나에만 집중력을 발휘함으로써 다른 삶의 자원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부르는 별도의 이름을 이미 가지고 있다. 바로 '중독'이다.



이제 뭔가 느껴지는가?


"어떤 일이 몰입이 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산성은 삶의 자원들을 균형 있게 발전시킨다. 만약 어떤 일이 삶의 자원을 균형있게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몰입이 아니라, 낭비다. 그리고 더 심하게는 중독일 수 있다."


아이들이 게임만 하는 것을 몰입이라고 말하는가? 그렇다면, 위의 말을 해주면서, 그건 낭비요. 중독이라고 가르쳐 주자.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 보는 것에 감히 몰입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이는가? 그렇다면, 위의 말을 해주면서, 그건 낭비요, 중독임을 알려주자.


물론 직업이 프로게이머인 사람, 직업이 유투브 크리에이터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프로게이머들은 하루 종일 게임할 수 있다. 유투브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 개발과 트렌드 분석을 위해 다른 영상을 시청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엄청난 생산성을 가지며, 곧 몰입이다. 그런데 과연 프로게이머가 몇명이나 될까? 유투브 크리에이터가 몇명이나 되는가? 그저 소비자요, 시청자요, 사용자로 머물러 있으면서 게임만 하고, 영상 시청만 하는 것은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 뿐이다.


몰입한 사람은 높은 생산성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다. 높은 생산성은 경제적 자원 구축과, 자부심과 삶의 의미는 정신적 자원 구축과 직결된다. 이렇게 일 잘 하는 사람 주변에는 이 사람에게 매료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외롭지 않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자원이 구축된다. 또한 이들에게 주어진 경제적 보상은 더 나은 의료 서비스 이용, 더 건강한 음식물 섭취와 연결되어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구축하는 데 유익을 준다. 이렇게 몰입은 신체적 자원, 사회적 자원, 경제적 자원, 정신적 자원이 고르게 성장시킨다.


그래서 몰입 연구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이렇게 불렀나 보다.


"몰입은 최적의 경험(optimal experie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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