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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Sep 27. 2023

공부가 안 되시나요? 일어서세요!

뇌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활동이 공부와 작업의 효율을 높인다!

대학원생 시절.

매일 같이 많은 양의 책을 봐야만 하고, 많은 양의 논문을 읽어야만 했던 그때.

잘 읽히는 날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잘 읽히지 않았던 날도 많았다.

생각의 흐름이 이어져야 하는데, 자꾸 끊기고, 딴짓하게 되고.

뭔가 그림이 그려지고, 조립이 되면서 내용 파악이 되어야 하는데, 파악이 안되고.

그러다보니 자꾸 처음으로 돌아가서 또 읽고, 또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고.

이런 비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는 날도 많은 것이다.


이날도 그랬던 것 같다. 책이 눈에 안들어오고, 논문이 머리에 안들어오던 날.

그런데 꾸역꾸역 읽어야만 하는 그런 날 말이다.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도 좀 났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좀 했다. 그리고 자세를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바꾸는 것이 아니라, 획기적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뭐냐고? 일어서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복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읽었다.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읽었다.

날씨 좋은 날에서 밖에 나가서 걸으면서 읽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안 읽히던 책이 일어서서 걸으면서 읽은지 얼마 안 되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안 읽히고 해석도 안되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논문이 조립되고,

머리에서 그림이 그려지지 시작했다.


이 경험은 내 공부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요즘도 나는 나는 뭔가 공부가 잘 안될 때, 일어선다.

책이 읽히지 않을 때 일어서서 읽거나 걸으면서 읽고,

논문이 읽히지 않으면 일어서서 읽기 시작한다.

심지어 요즘엔 글이 잘 안써질 때도 일어서서 글을 쓴다.

행정서류 작성이 힘들거나, 보고서가 팍팍 안써질 때 일어서서 써버린다.

PPT도 일어서서 만들면 그렇게 잘 만들어질 수 없다.

일어서서 움직이는 순간 마법처럼 뭔가 생각이 나고,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작업이 잘된다.


얼마전까지 나는 이것이 나만의 비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가 안될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학생들과 상담할 때나,

수업시간에 이런 질문을 받고서 답변해 줄 때,

일어서서 공부해보라는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이미 검증된 공부법을 담은 《메모리 크래프트》에 있는 말들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혹시나 비과학적인 내용을 전달할까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일어서서 공부할 때 공부가 잘 되고,

움직이면서 작업할 때 작업이 잘 되는 것이 나만 경험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기만 안했을 뿐이지, 학자들 중에는 이미 나처럼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이 많았고,

대학원생 중에서도 내가 발견할 것을 발견한 사람이 많았으며,

전세계적으로 나와 같은 방법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냥 서로 공유를 안해서 몰랐을 뿐이다.


이걸 어떻게 장담하냐고?

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나와버렸다. 심지어 뇌과학적인 연구가 출판되었다.

움직이면서, 걸으면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뇌로 가는 혈류량이 증가한다.

이렇게 뇌로 혈액이 원활하게 공부되면, 말그대로 머리가 팍팍 돌아가면서

집중력, 불필요한 자극의 통제력, 생각의 흐름을 이어가는 능력이 모두 증가한다.

좀 어려운 말로 인지적 효율성이라는 개념인데, 이것이 가만 앉아서 공부하거나 일할 때보다

움직이면서, 걸으면서 공부하거나 일할 때 훨씬 증가하는 것이다.


Photo by Viktor Forgacs on Unsplash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나만 아는 비밀인 줄 알았는데,

뇌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보편적 현상이었다니 말이다.

그래도 학자로서 이런 방법은 공유하는 것이 맞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효율을 내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여유시간이 더 많이지면 좋은 것 아닌가!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서 책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일어서서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산책하듯 걷는 정도이다.

강도 높은 운동은 그 자체로 모든 집중력을 소모하는 일이기에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없다.

그러나 일어서서 걷는 정도는 인지적 효율을 높이고, 다른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응용동작도 가능하다.

직장처럼 일어서서 걸을 수 없는 환경에서는

5분 정도 잠시 걷을면서 뇌에 혈액을 공급하고서 일하면 효율이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5분 계단을 오르면서 뇌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하고 일하면 일이 잘 될 수 있다.


환경이 허락한다면, 팔굽혀펴기를 20개 정도 간단하게 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뇌에 혈액과 산소를 풍부히 공급하면서 머리를 팍팍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걷기와 같은 약한 운동이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걷는 것 자체가 진화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이기에 공부나 작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뇌의 직접적인 조상인 구석기인,

즉 수렵과 채집을 했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일을 할 때 가만히 앉아서 하지 않았다.

늘 일어섰고, 늘 걸었고, 때로는 뛰었다.

일어서는 것으로 일이 시작되고, 앉는 것으로 일이 끝났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뇌는 일어서는 것을 일종의 작업 시작 신호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앉는 것은 작업이 끝난 신호의 역할을 한다.

이건 굉장히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앉아서 작업을 하는 환경에 놓여있는데,

이것이 우리 뇌 입장에서는 작업 시작이 아니라, 작업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는데, 사실 우리 뇌는 앉는 것을

공부 시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공부 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공부를 시작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닐까?


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우리 뇌는 '아! 이 친구가 뭔가 시작하는구나! 시동거는구나!'하고

우리의 작업을 도와줄 준비를 한다. 그래서 공부와 작업이 일어섰을 때 잘되는 것이다.


공부가 안되는가? 그럼 일단 일어서자!

우리 뇌는 앉아서 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뇌는 일어서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참고문헌

Kuo, C.-Y., & Yeh, Y.-Y. (2016). Sensorimotor-conceptual integration in free walking enhances divergent thinking for young and older adults. Frontiers in Psychology, 7, Article 1580.


Tsai, S. F., Chen, P. C., Calkins, M. J., Wu, S. Y., & Kuo, Y. M. (2016). Exercise counteracts aging-related memory impairment: a potential role for the astrocytic metabolic shuttle. Frontiers in Aging Neuroscience8, Article 57.


Ryan, S. M., & Nolan, Y. M. (2016). Neuroinflammation negatively affects adult hippocampal neurogenesis and cognition: can exercise compensate?.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61, 121-131.


*표지 그림 출처

Photo by Streetwind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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