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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May 29. 2024

공상과학 소설같은 이야기에
이걸 더해 대중을 움직이다

1960년대 미국인들은 어떻게 달에 가자는 말에 설득되었는가

1962년 9월. 어느 무더웠던 오후.

미국 텍사스에 있는 라이스대학교 풋볼 경기장에

3만 5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땀을 흘리며, 사람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날씨도 덥지만, 옆사람의 체온과 모인 사람들의 체온 때문에 실제로 더 더웠고,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좌우에 앉은 사람들과 접촉이 생겨 불편했다.


언뜻보면 이해가 안되는 광경이다.

덥다고 짜증을 내거나, 좀 지나가자고 화를 내거나,

나갈테니 좀 비켜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한데,

3만 5천 명이 마치 한 사람이 된듯이 조용하고, 고요하다.

오직 연설하는 한 사람의 말만이 폭풍처럼, 때론 잔잔한 호수처럼 들려올 뿐이다.

3만 5천 명 각자가 마치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고,

자기 자신과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는 사람만 있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천장에 조명이 있는 어두운 극장에서 배우와 객석에 있는 단 한명의 청중에게만

조명이 비추고 있는 그런 장면이 연출된 것 같달까.

이들은 지금 더운 날씨도 잊었고,

좌우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잊으며,

심지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와 시간도 잊고,

연설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3만 5천명 전체가 완전히 몰입한 것이다.


연설자의 연설은 17분 40초간 이어졌다.

어릴적 교장 선생님 말씀을 5분만 들어도 조는 사람이 생기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17분이나 연설을 들었음에도 조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17분의 연설이 끝나자, 천둥 소리가 연상될 정도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3만 5천명이 만들어낸 이 박소와 함성 소리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인근의 휴스턴 동물원에서 낮잠을 즐기던 사자, 기린, 펭귄이 놀라 일어날 정도였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날,

우리나라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동시에 이집 저집에서 '우와-!' 소리가 들리며

동네 전체가 들썩들썩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연설을 들었기에

이렇게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골을 넣을 때처럼

아니면 동계 올림픽 쇼트트렉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처럼,

하계 올림픽 양궁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10점을 맞추며 금메달을 확장했을 때처럼,

환호가 터져나왔을까?


연설의 주인공부터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재임기간: 1961년 1월 20일 - 1963년 11월 22일)이었던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였다.

그리고 그가 한 연설은 바로 문 프로젝트(Moon project, 달 프로젝트)에 대한

전국민적 후원을 요청하는 연설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17분 정도 진행한 연설의 요지는 이렇다.


달에 사람을 보내 발자국을 남긴 후,
지구로 귀환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그래서 부득이 하게 세금을 좀 올려야 겠다!
국민 여러분께 부탁 좀 하겠다. 이해 좀 해달라!


1962년에 여러분이 이런 연설을 들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연설이 끝난 후, 박수치고, 환호하며,

'내가 돈 낼테니 걱정마쇼!'라고 했을까?

'뭐여? 말도 안되는 공상과학 소설같은 짓에 내 돈을 쓰겠다고? 미친거 아니야?'라고 했을까?

대표적인 심리편향 중 하나인

후견편향(hind-sight bias: 일의 결론을 알고 난 후 그 결론에 맞게 생각을 고치는 것)에 의해

여러분 모두는 '내가 돈 낼테니 걱정마쇼!'라고 응답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기고 온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주과학에 당연히 힘을 보태야지!'

'내 세금 조금 더내는 것 아깝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는 1960년대임을 기억하자.

물론 당시에도 이미 비행기, 기차, 자동차, 배와 같은 운송수단들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지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었고,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해본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다.

요즘에는 일론 머스크가 세운 실험적 기업 스페이스-X가

유인 우주선을 만들어서 화성에 갔다 오겠다고 해도

'그럴수있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당시 사람들의 개념에는

지구밖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들어있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평생 태어난 동네를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말이다)


케네디의 연설은 SF소설에 불과했고, 말도 안되는 소리였으며,

허무맹랑한 망상이었다.

너무 순진하고, 낭만적인 꿈같은 소리였던 것이다.

그런 일에 돈을 내라니, 고작 이런 말도 안되는 일에 피같은 세금을 올리겠다니,

헛웃음이 나오고, 한숨이 나오고, 생각할수록 화가나고,

전국적인 시위를 해서 케네디를 탄핵하자는 말이 나올수도 있는 연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자고 하는 케네디에게 뭔가 홀린듯

빨려들어가 버렸고, 케네디가 하려는 문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기로 결심한다.

이 일을 위해 세금을 더 걷어도 좋다고 찬성한 것이다!

이렇게 생긴 것이 바로 NASA(미항공우주국)이다.

그리고 이 연설이 있고나서 약 7년이 지난 1969년 7월 21일.

마침내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였고, 인류의 발자국을 달에 남기게 된다.

SF소설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케네디는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걸까?

단체로 최면을 거는 주문같은 거라고 있었던 걸까?

최면까지는 아니지만, 당시 미국인들의 마음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한

심리학적 재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는 것처럼

누르기만 하면,

'다 오케이, 다 통과, 다 괜찮아, 케네디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반응을 켤 수 있는 만능의 심리적 버튼, 바로 '도덕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당시 미국인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도덕 감정 버튼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공산주의였다! '빨갱이'라고 하면 좀 더 잘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다.

당시는 냉전시대다.

사회주의 공산경제(사유재산 불인정, 시장자유 불인정)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사유재산 인정, 시장자유 인정)를 대표하는 미국이

어떤 체제가 진정으로 옳은 체제이며,

더 강하고, 지속력 있는 체제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싸우던 시대다.

당시 미국인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의고, 옳고,

이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부정하고, 틀렸고, 거짓인 사회주의 공산경제와의 경쟁에서 진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케네디가 연설을 하기 1년 전인 1961년,

소련의 우주선이 미국보다 먼저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소련의 군사력과 과학력이 미국보다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자,

자본주의 시장경제보다 사회주의 공상경제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케네디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빨갱이들에게 질 수 없다는 것,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옳다는 것을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지구궤도 우주선보다 더 위대한 일은 바로

누구도 가보지 못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케네디가 그냥 문 프로젝트를 하겠으나, 힘을 보태달라고 했으면,

미국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거나, 심하게는 거대한 반발에 직면했을 수 있다.

그런데 빨갱이를 무찌르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이기기 위해서,

미국이 수호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위대함을,

즉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달에 가겠다고 하자,

모두가 환호하고, 모두가 동의하고, 모두가 열렬하게 지지했던 것이다.


도덕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케네디의 연설은

자유주의를 지키려는 고귀한 도덕 감정에 스위치,

미국의 위대함을 지키려는 애국심과 충성심의 도덕 감정 스위치를 켜버렸다.

이 스위치가 켜지자 케네디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도덕 감정 스위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면,

그냥 SF소설로 끝났을 이야기, 분노나 짜증을 유발했을 이야기가

도덕 감정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감동적인 연설, 설득력 있는 명연설,

대중의 마음을 격동시켜 지지를 이끌어 내는 영향력 있는 연설로 바뀐 것이다.


혹시 정계에 있거나, 관계에 계신 인사 중에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정책을 준비하는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케네디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도덕 감정 스위치를 켜고, 그 정책을 이야기해야지

이런 작업 없이 멋진 PPT를 띄워놓고 이야기한다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지지, 특히 말도 안되는 이상적인 정책에 대한 지지,

특히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래 사회를 위해서는

꼭 해야하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야 할 때는

반드시 어떤 도덕 감정 스위치를 켜야하는지 부터 살펴보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노인 복지 제공 연령 상향 조정 등

(65세 이상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70세부터로 조정하는 것)

미래세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려다가 인기 급락하고, 엄청난 대중적 반발,

시위 및 정치가로서의 생명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라.

선진국의 기대수명이 85세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가려는 방향은 맞지만,

대중의 도덕 감정 스위치를 켜지 못했기에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정책에 맞는 도덕 감정 스위치부터 찾고,

그 스위치를 켤 수 있는 연설를 하라.

대중적 지지를 얻는 정책에는 도덕 감정이라는

심리적 스위치가 숨겨져 있다.


*참고문헌

Haidt, J. (2012).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Vintage.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Miguel Henr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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