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가지 도덕성의 기반을 차지하는 자, 천하를 차지하리라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의 기자 회견, 질의응답,
대국민 연설을 들을 기회가 급격히 증가한다.
유튜브가 온라인 세계를 장악하고,
너도나도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게 된 후에는
평소에도 정치인이 등장하는 유튜브 방송을 상당수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선거철에 이루어지는 정치인들의 발표 빈도를 넘어서긴 힘들다.
그러나 이렇게 수많은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들, 정치 패널들,
전현직 정관계 인사들이 떠들어댄다고 하더라도
결국 영향력 있는 발표는 몇몇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심리학을 아는 자들,
경험을 통해, 책을 통해, 감각적으로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는 자들의 발표만이
영향력을 가지고, 살아 남고, 그 사람 혹은 특정 정당에 대한
호감, 인기, 지지에 도움이 된다.
심리전의 대가들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들은 본인이 심리전에 대가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그저 떠오르는 걸 말하고, 평소 스타일대로 발표하고, 답변했을 뿐인데,
말을 할 때마다, 호감이 증가하고, 인기가 상승하며, 지지도가 올라간다.
도대체 이들은 대중들의 어떤 심리를 공략하고 있는 걸까?
바로 정답을 공개하곘다. 이 질문의 답은? '도덕 감정(moral sentimant)'이다.
도덕 감정.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한 개념이다.
'세상일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도덕 감정이니 말이다.
여러분이 '이건 아니지! 이게 나라냐! 이건 잘못되었지! 이러면 안되지!'라고 하며
의롭게 분노한 것이 있다면(의분한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
도덕 감정이 무엇인지 경험한 것이다.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는 정치인들은 이 느낌을 주는데 고수들이다.
이 고수들은 발표를 통해 질의응답을 통해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들로 하여금 '뭔가 잘못되고 있어! 이대로는 안돼! 바꿔야해!'라는 의로운 감정들을
불타오르게 만든다.
영어 'moral sentimant'에서 뒤에 있는 'sentimant'가
'감정'이라고 번역이 되서 좀 아쉽긴 한데,
'sentimant'라는 단어에는 뭔가 좀 예민하고, 민감하다는 뜻도 있음을 떠올려보자.
이렇게 보면,
도덕 감정이라는 것은 대중들의 예민한 반응,
더 정확하게는 민감한 반응,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인기 있는 정치인들,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의 공식적 발표와 평소 언행에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민감한 도덕 감정들이 넘쳐난다.
이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는 걸까?
복잡해 보이지만, 단 여섯 가지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배려와 피해의 영역을 공략한다.
사회적 약자들(어린이, 노인, 장애인)을 보살피고 있는가?
인간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동정심을 보여주고 있는가? 친절한가? 그렇지 않은가?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배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잘못되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이 이 문제를 보살필 것임을 분명히 한다.
바로 이런 부분을 건드려 줄 때, 대중은 환호하고, 지지도는 올라간다.
둘째, 이들은 공평성 혹은 공정성의 영역을 공략한다.
특권을 가지고 남용하는 자들이 있는가?
카르텔을 형성하여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있는가?
불공정하게 경쟁을 하고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은 자들이 있는가?
기회가 공정한가? 세금 제도가 공정한가?
상과 벌이 공정한가?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이런 공평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대중이 확인하게 되면, 지지도가 수직 상승한다.
셋째, 이들은 충성심과 배신의 영역을 공략한다.
누가 배신자인가? 누가 나라를 팔았는가? 누가 적과 내통하였는가?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한국에서는 빨갱이 프레임과 친일 프레임으로 늘 나타나는 문제다.
누가 친북 세력인가? 누가 친일 세력인가?
누가 국민을 배신하였는가? 누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고, 사적 욕심을 채웠는가?
누가 정치를 사욕 채우기로 변질시켰는가?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현재 이런 충성심에 문제를 제시한다.
특히 상대 정당은 배신의 정당이라고, 충성심이 없는 집단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은 충성심이 높다고, 국민을 위해서만 일할 것이라고 한다.
'동료 시민'과 같은 용어도 국민에 대한 충성심 차원을 선점하는 심리용어라 할 수 있다.
넷째, 이들은 권위와 자격의 영역을 공략한다.
과연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가? 누가 그런 자격을 주었는가?
과연 누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할 권위를 주었는가?
그런 권위와 자격을 얻는 과정은 정상적이었는가?
부정한 방법으로 그런 권위와 자격을 얻은 것은 없는가?
과학적인가? 비과학적인 주술에 불과한가?
논문이 표절인가? 아닌가?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이런 권위와 자격의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한다.
자신들은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권위와 자격이 있지만,
상대 정당은 사이비라고, 무자격이라고 공격한다.
국민들은 권위와 자격 문제를 면밀하게 살펴본 후, 지지를 결정한다.
다섯째, 이들은 고귀함과 혐오의 영역을 공략한다.
누가 범죄자인가? 누가 더러운가? 누가 깨끗하지 않은가?
누가 성폭행범인가? 누가 성차별주의자인가? 누가 개고기를 먹는가?
누가 뇌물을 받았는가? 누가 장애인을 차별하였는가?
누가 범죄자를 지지하는가? 누가 공범인가?
누가 외국인을 차별하였는가? 누가 인총을 차별하였는가?
누가 낙태를 지지하는가? 혹은 반대하는가?
누가 사회의 금기를 깨는가?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자신들이 이런 고귀한 정치를 수호하고 있으며,
더러운 것과 금기시되는 것은 멀리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어필한다.
여섯째, 이들은 자유와 억압의 영역을 공략한다.
누가 자유를 억압하는가? 누가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는가?
각종 규제로 자유를 빼앗는 쪽은 어디인가?
서류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일하기 힘들게 만드는 쪽은 어디인가?
제도를 점점 복잡하게 만들어서,
그걸 아는 사람들만 특권을 누리게 하는 쪽은 어디인가?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출판의 자유, 교육의 자유,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소유와 처분의 자유를 누가 더 억압하고, 힘들게 만들고 있는가?
더 나아가 누가 자유를 빙자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누가 다른 이의 자유를 빼앗고 있는가?
몇몇 사람의 자유를 위해 과연 더 많은 사람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지는 않은가?
도덕 감정의 고수들은 이렇게 자유와 억압의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이건 사실 내가 처음 개발한 것이 아니다.
조너선 하이트라는 사회심리학자가 고안한
도덕성 기반 이론이라는 것을 좀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고 싶은가?
정치가로서 성공하고 싶은가? 도덕 감정을 지배하라.
도덕 감정을 지배하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다.
*참고문헌
Haidt, J. (2012).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Vintage.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의Kelli Doug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