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과 투지가 넘쳤던 대한의 낭만적 선배님들이 그립다
학교 교육은 이성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언제나 깊게 생각해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악당이라고 한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곧 이성을 강조하는 학교 교육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수학을 포기한 악당들과 수학을 잘하는 특권층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말이다.
학교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수학을 잘하던 이성적인 사람들은
학교 교육이 끝난 후에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렇게 훌륭한 이성을 갖추고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해 있을텐데, 그런 합리적 이성은 우리 사회에서 왜 찾아보기 힘든걸까?
기업에서도, 국가기관에서도, 각종 모임에서도
감정적인 사람들만 득실득실한 이유는 뭘까?
'성인기 이성 실종 사건'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이 사건의 비밀은
학교 교육이 인간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은 마치 인간의 이성을 갈고 닦고, 감정을 억눌러 버리면,
훌륭한 사람들이 양성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 착각이다.
인간은 감정적 직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이성 시스템을 갖추지 있지 못한 탓이다.
인간이 합리적 이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교육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겠지만,
인간에게는 이것이 없다. 없는 것에 뭔가를 쏟아 붓는다고 해서 발전하지는 않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인간은 있는 것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에서 발견하며, 있는 것에서 발명한다.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에 없는 이성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부시킨다고 생각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발전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그 목적부터가 잘못되었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합리적 이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 직관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학교가 이것을 잘못 가르쳤기에 이 세상에는 늘 내적 고민과 갈등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달리 세상은 온통 감정과 직관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 때문에 이성적인 척하고, 이성적인 사람인 양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감정적 직관에 따라 살고 있음을 알기에 뭔가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감정적 직관 시스템대로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 모습이 맞으니 말이다.
혹시 오해할까봐. 집고 넘어가자면 공부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 매일매일 꾸준히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공부가 이성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공부는 감정적 직관 시스템의 정확도와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지,
합리적 이성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직관은 인류의 뇌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시스템이다.
여러분이 뭔가 결정하고, 판단하며,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이성 덕분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틀렸다!
여러분이 판단, 결정, 행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전적으로 감정 시스템 덕분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대형 문구점에 가서 볼펜을 사려고 하는데, 볼펜 종류가 수백가지다.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여러분은 철저히 따져보고, 계산하여 가성비가 가장 좋은 볼펜을 사고자 한다.
과연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수많은 행동심리 연구자들과 소비자심리 연구자들이 확인한 것처럼
이런 이성으로는 볼펜 하나 쉽게 고를 수 없다.
고르다고 하더라도, 3-4시간이나 사용해야 간신히 볼펜 한자루 살 수 있게 된다.
결정장애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결정장애가 왜 생기는 줄 아는가?
너무 이성적이기에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완벽한 것을 찾으려고 하다가 생기는 것이 결정장애다.
그 사람이 그렇게 결정장애에 빠져 있는 동안 좋은 기회는 다 날라가고,
결정할 필요조차 없어지고 있을 수 있다.
결정장애는 이성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결정장애는 감정의 결여에서, 감정적 직관 시스템이 제기능을 못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과연 볼펜 한 자루 사는데 3-4시간이나 걸리는 사람이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생산성 있게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아마 이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 하나 고르는데 또 한 3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이성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런 식이다.
너무 느리고, 너무 생산성이 떨어진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생산성이 그냥 없다.
그런데 뭐? 이성적으로 살으라고? 이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너무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렇게 생산성 없는 이성 시스템을 가진 것이 아니라,
빠르고도 정확한 감정 시스템을 가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 시스템으로 볼펜을 순식간에 정해 버린다.
평소 쓰던 브랜드, 대충 좋아 보이는 것, 누군의 추천, 광고에서 본 것 등등의
정보를 통해 선택지를 순식간에 좁히고, 그 후 단 하나의 적당한 선택을 해버린다.
일을 할까말까 이성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해버리고,
글을 쓸까말까 이성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써버리고,
작곡을 할까말까 이성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해버리고,
그림을 그릴까말까 이성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버린다.
직장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이력서를 쓸까말까 고민만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그냥 써버려야 한다.
개인에게 목표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개인이 자기개발에 힘쓰게 되는 원동력은 이성이 아니다. 전적으로 감정이다.
개인의 진보와 발전은 이성이 기여하지 못한다. 감정이 기여한다.
전문가가 이성 시스템을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전문가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감정적 직관 시스템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다듬은 사람이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운동 선수가 이성 시스템을 활용해서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경기에서 성과를 보였을까?
뛰어난 운동 선수가 이성 시스템을 사용하는 순간 그 선수의 모든 기량은 뚝 떨어질 것이다.
운동 선수가 연습하여 발전시키는 것은 감정적 직관 시스템이지, 이성이 아니다.
글쓰는 사람도, 가수도, 작곡가도, 미술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물리학자, 수학자도 그렇다.
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록 물리학에 대한 감정적 직관이 발전하고,
수학에 대한 감정적 직관이 발전하는 것이지, 이성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공학자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컴퓨터 공학을 열심히 공부할 수록 컴퓨터 공학에 대한 감정적 직관이 발전하지,
이성이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정보를 이성은 파악할 수 없으나,
감정은 순식간에 판단하고,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감정은 지금이 하던대로 할 상황인지, 아니면 혁신이 필요한 순간인지도 알려줄 수 있지만,
이성은 긴급한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주지 못한다.
인류 전체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인류 전체가 지금처럼 진보한 것이 이성의 힘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인류 전체가 지금처럼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적 직관이 갈수록 정교하게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발명과 발견은 이성으로 된 것이 아니라,
감정적 직관 시스템이 제공한 협동심, 공감, 사랑, 열정, 호기심, 정의감, 때론 복수심이
인류의 발전에 필요했던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 왔다.
한국 사람이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전세계적인 한국문화 열풍을 불러올 수 있었겠는가?
'내친김에 세계에 진출하자!'라고 생각했던, 이수만(SM), 양현석(YG), 박진영(JYP)이 없었다면,
블랙핑크도 없었고, 방탄소년단도 없었을 것이다.
감정적인 열정에 맞게 이성을 발휘했던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문 프로젝트(Moon project: 인류최초 달착륙 프로젝트)를
진행했는가? 아니다. 당시 케네디는 소련과의 군사경쟁에서, 우주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감정적 열정이 폭발하여 말도 안되는 문 프로젝트(Moon project)를 진행했던 것이다.
소련이 지구 궤도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것에 성공하자,
'에이씨! 우리는 달에 사람을 보내버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적 폭발이 기술 발전을 가져왔고, 지금의 우주시대를 열었다.
나는 이런 감정적 의사결정과 행동에 조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다.
더 정확하게 문학에서는 이미 있던 말인데, 심리학의 용어로 사용하고 싶다.
바로 '낭만적 의사결정'이다.
낭만적 의사결정,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 아직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감각되지 않는 꿈을 믿고 나아가는 것!
이런 낭만적 의사결정자들에 의해 세상은 변화했고, 발전했고, 진보했다.
자꾸만 '이성, 이성'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외면하지 말자.
어려운 순간일수록 힘들수록 이성을 찾으라고?
글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로 밖에 안들린다.
해결하려면 움직여야 하는데, 이성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없다.
올바른 약처방을 하면, 사람이 다시 힘을 얻고 움직이게 되는데,
약효가 없다면, 약처방이 잘못되었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이성은 올바른 약처방이 아니다.
감정적 직관, 감정적 열정, 즉 '낭만'이 올바른 약처방이다.
힘든 순간마다 여러분에게 갈길을 보여주는 것은 이성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고난의 순간마다 우리에게 갈길을 보여준 건 낭만이자 꿈이다.
이런 낭만이 있었기에 고난을 극복하고,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극복한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가 너무 이성적이기에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고 믿는다.
결혼을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결혼 못한다.
예전 어른들이 어디 다 돈 벌고, 결혼했던가. 결혼하고 돈벌었지.
아이를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낳을 수 있을까?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결론은 낳지 말자 쪽이 될수밖에 없다.
예전 어른들이 어디 다 돈 벌고 아이를 낳았던가. 아이 낳고 돈벌었지.
한국 사회가 모든 면에서 침체를 겪는 문제는 이성에 대한 신격화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
되지도 않는 이성을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모든 것을 다 이것저것 따져봐야 한다고 신중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의 부작용,
인간의 본질을 외면하고, 이성적인 사람인 척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사회의 부작용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성장, 저출산, 고빈곤 한국 사회를 만들어냈다.
점점 낭만과 꿈이 없는 젊은 이들이 자라나고 많아지는 것 같아 무섭다.
낭만이 없는 젊은이들. 도전 의식이 없고, 열정이 없고, 꿈이 없는 대학생들.
다른 사람이 도전하고, 남이 부리는 열정과 동기부여를
유튜브로 감상만 하고, 시청하는 것에만 목매고 있으면,
정작 자신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람로 가득찬 사회에 미래는 없다.
백날 결혼하면 지원해주고, 아이나면 지원해준다고 정책을 내놓아 보라. 사람들이 결혼하나.
이미 모든 것을 다 따져보고 신중해야 한다는 이성 문화가 깊이 침투한 상태에서는
모든 정책은 무효다.
낭만을 따라도 괜찮다는, 꿈을 쫓아도 된다는,
낭만과 꿈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문화가 다시 형성되는 것이 먼저다.
지나친 이성적 고민으로 때문에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망설이는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그리고 이런 심리적 문제가 집단 단위에서 일어나는 문화가 바뀌지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심지어 요즘에는 연애하는 것도 남들이 연애하는 것만 구경한다.
본인들은 연애를 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연애하는 것을 구경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있는 과연 사회가 정상일까?
낭만이 실종된사회에서 낭만에 대한 갈급함이 얼마나 넘쳐났던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는 시즌3까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후배들에게 꿈을 주고, 낭만을 주고,
그 낭만과 꿈을 따라도 괜찮다는 의지를 주는 낭만닥터 김사부.
한국 사회는 곳곳에 숨어서 활약하신 이런 낭만닥터들 때문에 발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10년 뒤에도 이런 낭만닥터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용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가?
낭만닥터들 없이 한류가 언제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낭만닥터들 없이 한국축구가 언제까지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낭만닥터들 없이 K-pop이 언제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사회가 다시 일어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낭만과 꿈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일을 하고, 부딪혀보고, 헤쳐나가보는 야성을 깨워야 한다.
길이 없으면, 까짓거 만들어 버리겠다는 야성과 투지, 낭만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뜨거운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던 선배들.
야성미와 투지가 넘쳤던, 진정한 낭만이 넘쳤던,
낭만적인 그 선배들이 그리워지는 날이 점점 많아진다.
*참고문헌
Twenge, J. M. (2023). Generations: The Real Differences Between Gen Z, Millennials, Gen X, Boomers, and Silents—and What They Mean for America's Future. Simon and Schuster.
*표지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