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활의 99퍼센트가 직관적인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축복이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
모든 판단과 결정, 행동을 수행함에 있어
이성적이고, 수학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는가?
아니면
매사 감정적이고, 습관적(관습적)이고, 직관적이고, 충동적이었는가?
내가 여러분의 삶을 다 모니터링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오늘 나의 하루는 이성적이고, 수학적이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소'라고
답하고 싶은 분이 많을 거라고 본다.
어느 누가 자신의 삶을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라고 말하고 싶겠는가?
영미 문화권의 사람들도 자신을 표현하거나 소개할 때,
'rational(이성적), mathematical(수학적),
logical(논리적), reasonable(합리적)'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지,
'emotional(감정적), habitual(customary, 습관적, 관습적),
intuitional(직관적), impulsive(충동적)'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 아니던가.
감정적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생각 없는 사람은 나쁜 사람 아니던가.
수학적이라는 것은 이해력과 지능이 높다는 것이고,
이해력과 지능이 높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않은가.
습관적이라는 것은 틀에 박혀 있다는 것이고,
이는 게으름의 다른 말로 나쁜 사람이지 않은가.
논리적이라는 것은 세상일들의 연관성과 인과성을 밝히 안다는 뜻이며,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않은가.
직관적이라는 것은 느낌과 주관적 경험을 믿는다는 뜻인데,
이렇게 느낌과 자기 경험만 따라가는 사람은 꽉 막힌 나쁜 사람아니던가.
합리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진짜 이득이 될지,
무엇이 장기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고 헤아려본다는 뜻이며,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 분명하지 않은가.
충동적이라는 것은 겉모습에 현혹 당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며,
단기적 쾌락만 쫓아간다는 뜻이며,
이런 사람은 폐가망신하기 딱 좋은 나쁜 사람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현대사회는 이성적, 수학적, 논리적, 합리적인 특성은 좋은 사람의 특성으로,
감정적, 습관적, 직관적, 충동적인 특성은 나쁜 사람의 습성으로 규정지어 왔다.
대학에서 학생을 뽑을 때의 기준도
이성적, 수학적, 논리적,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지
(소위 공부 잘한다고 할 때도 이런 것을 말하지 않던가),
어느 대학이 감정적, 습관적, 직관적, 충동적인 특성을 가진 나쁜 사람을 뽑고 싶어 하겠는가.
기업에서 사원을 뽑을 때도 국가기관에서 공무원을 뽑을 때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을 뽑는 것이 목적이며,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은 걸러내서 탈락시키려 한다.
심지어 감정적이고, 습관적이며,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은 짐승이라고, 동물이라고 하며,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 현대사회다.
인간이라면, 이성적이어야 하고, 수학적이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사람의 조건이기 전에, 인간이기 위한 조건인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했지 않은가. 생각하지 않으면, 죽은 것과 같다고. 이성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말이다.
(생각해야 존재한다는 것을 반대로 표현한 것임)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을까?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내가 오늘 하루 100명을 만났다면,
여러분이 만난 100명 중 몇 명이나 좋은 사람(이성적인 사람)일까?
드디어 심리학의 시간이 왔다.
심리학자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도록 하겠다. (안 궁금했다면, 미안)
정답은?
'0명'이다.
'어이! 거기 심리학자! 지금 실수한 것 아니요?'
이런 생각이 불쑥 떠오른 분이 있는가?
아쉽지만,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다.
심리학은 모든 인간은 이성적인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적인 나쁜 사람임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물론 정말 이성적인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이성적인 좋은 사람이라고 난 믿는다.
100명 중에 1명 정도는 이성적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이 그 1명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이유로 여러분이 만난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닐 것이다.
여러분이 100명 중의 1명인데, 여러분이 만난 사람 중에 또 그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니 말이다.
그럼 이국희 박사 너는 좋은 사람이냐고?
아니다. 나는 무척 나쁜 사람이다.
나 이국희는 아주 감정적이고, 직관적이고, 습관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다.
나는 100명 중 1명이 아니라, 100명 중 99명에 속하는 보편적인 사람이다.
이국희가 얼마나 감정적이고 충동적인지는
내 와이프와 자녀들이 확실하게 증언해줄 수 있다.
(참고로 내 와이프는 100명 중 1명 계실까 말까한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 현대사회가 말하는 그런 좋은 사람은 드물다.
이 세상은 현대사회가 정의한 나쁜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째서 이 세상에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이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크게 열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똑바로 보고, 들어보자.
잘못된 것은 현대사회가 정의한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것을 나쁘다고 정의한 현대사회가 잘못이다.
경제학이 내린 인간에 대한 가설만 인정하고,
심리학이 과학적으로 확인한 진짜 인간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경제학은 인간을 이성적이라고, 합리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인간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오히려 인간은 언제나 감정적이었고, 충동적이었다. 이게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이런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 나쁜 걸까? 아니다. 이걸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나쁘다.
한 사람이 내리는 판단, 결정, 행동의 99퍼센트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직관적이고, 습관적이다.
오직 1퍼센트만이 이성적이고, 수학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것이다.
여러분이 무엇인가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지금 감정에 의해, 충동에 의해, 직관에 의해, 습관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99퍼센트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은
인간의 이런 특성에 대해 시스템1(System1)을 사용하는 인간이라고 불렀다.
시스템2(System2)는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시스템인데,
인간은 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System2를 99퍼센트 사용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심지어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한 인간이 99퍼센트 감정과 직관을 따르다가
1퍼센트 이성을 사용하게 되는 이유도
결국은 감정과 직관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임을 확인했다.
쉽게 말해 인간은 이성적으로 화를 참지 못한다.
일단 감정적으로 화를 낸 후, 화를 낸 이유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성을 동원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99퍼센트가 감정적이 아니라, 그냥 100퍼센트가 감정적이다.
여기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있었다면,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말했잖아. '이성은 감정의 하인이다'라고 말이야"
맞다. 카네만의 발견도, 하이트의 발견도 흄이 이미 발견했던 것을
재발견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인간됨은 이성에 있지 않다.
인간의 인간됨은 감정에 있다.
인간의 인간됨은 논리에 있지 않다.
인간의 인간됨은 직관에 있다.
인간은 이성에 의지하여 이렇게 발전해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감정과 열정에 의지하여 이렇게 발전해왔다.
어떻게 시스템1에 99퍼센트 의존하고 살면서 이렇게 발전할 수 있냐고?
이게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 생각없이, 자동적으로 99퍼센트의 일을 처리하니까.
진짜 어렵고, 힘들고,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1퍼센트의 일에
1퍼센트의 이성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뛰어남이자, 덕이자, 지능이다.
99퍼센트의 일을 감정적이고, 자동적으로 대응한다고 투덜댈 것이 아니다.
99퍼센트의 일을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처리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정이 이성의 하인인 인생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인생인가.
이성이 감정과 직관의 하인인 인생들이기에
이렇게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나름 행복하고, 나름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수많은 판단과 결정과 행동을 적절히 해낼 수 있다는 것!
이런 걸 축복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 축복일까!
오늘 하루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일들을 척척해낸 시스템1에게 박수를 보낸다.
*참고문헌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Macmillan.
Haidt, J. (2012).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Vintage.
*표지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