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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24. 2024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하는 것들의
한 가지 공통점

우리 뇌의 감정 센터와 기억 센터는 왜 붙어 있을까?

모든 개인은 다르다. 사람마다 다른 걸 보고, 다른 걸 듣고, 다른 걸 느낀다.

사람마다 쓰는 물건이 다르고, 같은 물건이라도 쓰는 스타일이 다르다.

사람마다 먹는 것이 다르고, 먹는 스타일이 다르다. 패션 감각, 헤어 스타일, 말투도 모두 다르다.

모든 개인은 각자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이 모든 차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은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신경 쓰는 영역이 각자 다르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 신경을 쓰는 영역이 다르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수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직업의 차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 사이에 주의를 기울여온 영역이 다르기에 발생한다.

운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스포츠 선수가 되고,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작곡가나 가수가 되고,

미술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웹툰 작가나 화가, 디자이너가 된다.

전공이 다르다는 것도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이 다르다는 뜻이다.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더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일 영역을 정한다는 뜻이고 말이다.

일반 사원일때는 주의를 기울이는 범위가 좁았다가,

경력이 쌓이고 관리자가 되면 주의를 기울이는 범위가 넓어져야 하는데,

이런 것도 궁극적으로는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과 범위의 차이는 심오한 인지심리학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기여한다.

쉽게 말해, 사람마다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에 다른 것을 기억한다.

똑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서로 기억하는 것이 다른데,

이는 주의를 기울인 영역, 강도,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서로 기억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때가 많은데,

이는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심지어 한 개인 안에서도 오늘과 내일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는 영역이 다를 수 있다.

똑같은 영화를 여러번 본적이 있는가? 그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가?

이것은 한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조차도

그날그날 상황이나 상태, 감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똑같은 책을 여러번 볼 때도 마찬가지다. 볼때마다 새로운 부분이 발견되고,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인가 싶고,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이 맞는지 신기하게 느껴질때가 많다.

이처럼 사람마다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과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기도 하지만,

한 개인 안에서도 월요일에 주의를 기울여 기억하는 영역과

화요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는 영역이 다를 수 있다.


그럼 이렇게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고,

다른 기억을 가지며, 각자도생하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각자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이 다를 때가 많지만,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공통의 주의를 기울이고, 공통의 기억을 형성한다.

오랜 친구들이 만나 술 한잔 기울일 때,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은 좋은 안주가 되고,

오랜 친구들이 또다른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만나 식사할 때도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대화의 소재가 되며,

오랜 직장 동료들이 옛 직장 상사의 장례식장에서 만나 함께 조문을 할 때는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추모의 소재가 된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는 영역이 너무도 다른 개개인이 공유하는 기억이 있고,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있다니 말이다.

심리학을 모를 때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부분인데,

심리학을 안 다음에 무척 신비롭게 다가온 부분 중 하나다.

공동체 구성원들끼리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이렇게 만다는 것은 인간 기억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오랜 기간 답을 찾아 헤매이던 나에게

이스라엘에 있는 와이즈만과학연구소의 연구결과는 그야말로 빛이었다.

국제저명학술지 《Science》에 실린 이 연구결과를 받아든 순간 나는 무엇인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안개가 끼어서 희미하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왔고, 고해상도 영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간단했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 동일한 영화를 보게 한 후, 각자 기억하는 부분을 써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을 분석하여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부분을 추려냈다.

더하여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fMRI로 참가자들의 뇌를 측정한 후,

이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한다고 언급한 장면이 나오는 동안

이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살펴보았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먼저 사람들은 크게 4가지 영역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영역은 '반전'이 일어난 부분이다.

착해보였던 사람은 최악의 빌런으로 밝혀지는 순간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고, 이를 공통적으로 기억했다.

두 번째 영역은 '큰 폭발이나 화재'가 일어난 부분이다.

큰 폭발이나 화재 장면이 생생한 시청각 효과와 함께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이를 공통적으로 기억했다.

세 번째 영역은 '대규모 총격 장면'이었다. 총격 장면에서 피가 튀기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들릴 때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고, 이를 공통적으로 기억했다.

마지막 네 번째 영역은 '총격과 폭발이 함께 하는 장면'이었다. 총싸움을 하면서 누군가 폭탄을 떠뜨리거나,

수류탄을 던져서 주변을 다 날려버리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요동치는 감정을 느꼈고, 이를 공통적으로 기억했다.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 것에 흥분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보고, 또보고, 또보고를 몇일간 이어갔다.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오면, 자꾸 보고싶어 지는 것이 연구자의 마음인 걸 나는 잘 안다.

나도 그러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몇번이고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보던 어느날 한 연구원의 머리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이 네 가지 패턴 자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나의 개념이 떠오른 것이다.

오랜시간 데이터를 배양하고 숙성한 끝에 통찰(insight)의 순간에 임했다.

이 연구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단어는 바로 '감정'이었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똑같은 걸 기억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렇게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은 모두 감정적 격동이 포함된 장면이었다.

'반전, 폭발, 총격, 피, 죽음' 이 모든 것은 감정적 격동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통찰에 이른 연구원은 즉시 fMRI 측정 결과와 자신의 가설을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감정적 격발에 의한 것이라면,

공유하는 네 가지 패턴이 등장하는 영화의 장면에서 사람들의 뇌는 비슷한 반응을 했어야 한다.

특히 인간의 감정 센터인 편도체와 편도체 바로 옆에 있는 기억 센터 해마가 동시에 활성화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러한 두뇌 촬영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반전이 있는 장면에서 모든 사람들의 편도체와 해마가 동시에 활성화되었고,

총격과 폭발, 피와 죽음이 있는 장면에서 모든 사람들의 편도체와 해마가 동시에 환하게 빛났던 것이다.

그랬다. 모든 면에 다른 걸 보고 듣고 기억하는 인간들이지만,

감정적 격발과 동요를 유발하는 것들만큼은 함께 기억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공유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한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인류가 공유하고 기억들은 참으로 감정적이다.

그리스 신화들을 보라. 신들이 간통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이간질을 하고, 더러운 음모를 꾸미고,

온갖 감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성경을 보라. 간음하다 현장에서 걸린 여인, 귀신 이야기, 도시 하나가 불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이야기,

온 세상의 물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이야기, 꺼지지 않는 지옥불의 이야기 등

감정을 격동시키는 스토리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시청률이 높기에 함께 기억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라.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 부모 간의 에피소드에는 언제나 감정적 폭발이 있고,

범죄에 대한 이야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감정적 폭발이 있다.

과학적 데이터보다 감정적 격발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강사의 강연은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공감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여러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감정을 건드려주는 것이 공감이 아니겠는가.


뇌과학적으로 감정 센터인 편도체와 기억 센터인 해마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서로 활발하게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감정적 격발이 있는 사건에 대해 편도체가 해마에 신호를 주면,

해마는 그 신호를 받고, 더 정성을 기울여 기억을 해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반대로 해마가 그렇게 기억해 둔 감정적 사건과 비슷한 일이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편도체에 신호를 주면, 편도체는 그 신호를 받아

인간의 생리적 작용과 행동적 작용을 예전에 그 일에 맞게 조절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여러 사람의 감정 센터가 자극을 받아 해마에 동일한 신호를 주면 동일한 기억이 생기고,

그렇게 만들어진 동일한 기억이 감정 센터에 정보를 전달하면, 그때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이 공감대 형성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숨겨진 뇌과학적 비밀이다.


여러 사람에게 같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고 싶은가?

강력한 감정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하라.

모두가 공유하는 기억은 모두가 공유한 감정이다.


*참고문헌

Hasson, U., Nir, Y., Levy, I., Fuhrmann, G., & Malach, R. (2004). Intersubject synchronization of cortical activity during natural vision. Science, 303(5664), 1634-1640.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nextb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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