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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17. 2024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되는 일의
뇌과학적 비밀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같은 장면에서 웃거나 운 적이 있는가?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볼 때는 어땠는가? 나를 포함한 다수의 관객들이 같은 장면에서 웃거나 울지 않았는가?

분명 그랬을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경쟁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다가

가슴이 웅장해지고, 눈 시울이 붉어지며, 코끝이 찡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가?

멀고 먼 타국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가슴 한편이 뭉클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문득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도 모두 훌쩍훌쩍하고 있지 않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도 분명 '그렇다'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그 순간에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동일한 장면에 함께 감동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내가 느낀 것을 너도 느끼고,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일까?

여기에는 놀라운 심리생리학적 비밀이 숨어 있다.


먼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 호흡, 심장박동, 신체리듬 등이 비슷해진다.

영화관에 처음 들어설때는 제각각이던 사람들의 호흡이 영화를 보는 동안 비슷하게 맞춰지고,

영화관에 막 앉았을 때는 다 다르던 심장박동이 영화를 보는 동안 비슷하게 맞춰진다.

마치 합창단이 하모니를 맞추듯이 자신의 호흡과 심장박동 등의 생리적 반응을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게 조율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리적 반응의 동기화(Synchronization of physiological responses)라고 부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과 생리적으로 싱크(Sync)가 되는 것이다.

혹시 여성분들 중 대학 다닐 때, 기숙사에 살아보신 분이 있는가?

그럼 혹시 이런 걸 경험하지 못하셨는가?

자신의 룸메이트와 생리 주기가 비슷해지는 경험 말이다.

사실 이것도 생리적 반응의 동기화이다. 하모니가 일어난 것이다.

심지어 기숙사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룸메이트와 심장박동과 호흡 패턴까지 바슷하게 변한다.

나는 이런 사실을 접할 때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굉장한 진실임을 느낀다.

인간은 너무나 사회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바이오 리듬까지 맞출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아직 놀라긴 이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바이오 리듬을 조율되어 가는 동안

서서히 조율되어 가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짜잔! 바로 뇌이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모두 달랐던 두뇌 반응 패턴이 영화관이 들어오고,

주변에 사람들이 들어 차기 시작하는 순간 서서히 조율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바로 옆 사람과 조율이 되고, 다음에는 앞뒤에 있는 사람들과 조율이 되고,

다시 그렇게 조율된 사람들의 상하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조율이 되고,

어느새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뇌가 다 합창단의 하모니처럼 조율이 된다.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응원단과 관중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난다.

먼저는 바이오리듬이 조율되고, 그 다음에는 두뇌 반응이 조율되어 간다.

그리고 어느새 거대한 파도처럼 혹은 잔잔한 호수처럼 비슷한 두뇌 반응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두뇌 동기화(Brain Synchronization) 현상이다.

우리 뇌가 주변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기화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같은 시간에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성화와 비활성화 패턴을 보이던 뇌들이

동기화가 된 후에는 같은 시간에 같은 영역에서 활성화와 비활성화 패턴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두뇌 동기화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같은 걸 보면서 같은 걸 느끼고,

같은 걸 경험하고, 같은 걸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웃고, 같이 화내고, 같이 울고, 같이 아쉬워하고, 같이 짜증내고,

같이 환호하고, 같이 감동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은 우리 뇌가 주변 사람들과 동기화될 수 있는 사회적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 뇌는 독불장군처럼 자체적인 반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 뇌는 주변 사람들과 맞춰가는 반응을 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만약 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의 두뇌 반응에 맞춰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약간 이상한 사람이고,

심각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는 다른 사람들, 공동체 구성원들과 맞춰가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것이다.


동기화된 뇌들이 사회적으로 분노하면, 그 사회에는 혁명이 일어났고(우리나라의 민주화 항쟁처럼),

동기화된 뇌들이 사회적으로 하나되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며(우리나라의 IMF 위기 극복처럼)

동기화된 뇌들이 누군가를 지지하면, 정치적 스타가 탄생하고,

동기화된 뇌들이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면, 문화적 대세가 된다.

동기화된 뇌들이 한 마음으로 일하는 회사는 성공하지만, 파편화된 회사는 망한다.


인간은 주변 사람들과 두뇌 반응이 동기화되어 함께 기뻐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것에서

인간의 의미를 느끼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더 건강해지며, 우울증과 스트레스의 감소를 느낀다.

주변 사람들과 동기화되어 함께 뛰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환호하는 동안 느껴지는 '하나됨'의 감정과

거대한 사회의 일원이 된 것과 같은 '초월적 감정(초월감)'을 느끼는 것은

개인에게 짜릿함, 정화감(카타르시스), 고양감을 주고, 황홀함도 선사한다.

혼자 있던 사람이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하면 생기를 되찾지만,

함께 하던 사람이 혼자 지내고, 고독해지고, 외로워지면 생기를 잃고, 죽음을 맞이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행복의 비결은 공동체 구성원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하루에 한 번 이상 두뇌 동기화를 경험하면서 하나됨, 소속감, 초월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가 이런 것임을 깨닫는 것에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Yun, K., Watanabe, K., & Shimojo, S. (2012). Interpersonal body and neural synchronization as a marker of implicit social interaction. Scientific Reports2(1), 959.


Bao, Y., Pöppel, E., Wang, L., Lin, X., Yang, T., Avram, M., ... & Zhou, B. (2015). Synchronization as a biological, psychological and social mechanism to create common time: A theoretical frame and a single case study. PsyCh Journal4(4), 243-254.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Jimmy Con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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