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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n 12. 2024

커플의 뇌 사진으로
곧 헤어질지 아닐지 알 수 있다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커플의 뇌에선 이것이 나타난다!

사랑을 주제로한 옛날 디즈니 만화를 보면,

'그 후로 이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백설공주와 그녀를 구한 왕자가 그랬고,

신데렐라와 그녀를 구한 왕자가 그러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마찬가지고,

미녀와 야수는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정말 멋진 해피엔딩아닌가!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갈수록 이런 이야기가 너무 비현실적임을 알게 되었다.


과연 백설공주와 그녀를 구한 왕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신데렐라와 그녀를 구한 왕자가

평생토록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지켜갔을까?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그녀를 구한 왕자는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손을 맞잡고 삶을 마감했을까?

미녀와 왕자로 변한 멋진 야수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을까?

자. 이제 동심을 파괴해보자.

이혼률이 50퍼센트를 넘고, 60퍼센트에 육박하는 선진국을 기준으로 할 때,

백설공주 커플, 신데렐라 커플, 잠자는 숲속의 공주 커플, 미녀와 야수 커플 중

(참고로 이 네 커플은 모두 서양 선진국 출신이다)

최소 두 커플은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싸우고, 짜증내고, 분노하다가

결국 서로를 이해하길 포기하고 '성격차이'를 사유로 이혼했을 확률이 높다.

동심을 너무 심하게 파괴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이게 현실인데 어떡하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니... 정말 동화같은 순진한 생각이다.

이왕 동심을 파괴한 마당에 하나 덧붙이자면,

뽀로로와 친구들은 고아다.

고아들이 힘을 합쳐 악당도 물리치고, 씩씩하게 살아가다니

나는 뽀로로와 친구들을 볼때마다 좀 슬프다. (갱년기인가...)


이렇게 우리는 두 커플 중 한 커플이 헤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커플이 헤어지는 걸까?

이걸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뭔가 측정한 후에

'측정 결과를 보니 이 커플은 오래가겠군'

'으음. 결과를 보니 이 커플은 곧 헤어지겠군'

이렇게 예측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까?

20세기까지는 이런 수단을 찾기 힘들었지만,

현대사회에는 이것을 알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생겼다.

바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라는 뇌 촬영 장비다.

두 커플을 이 시끄러운 기계 안에 집어 넣고,

뭔가 행동을 하게 한 후, 이 두 사람의 뇌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 둘이 금방 헤어질 사이인지, 오래도록 사랑할 사랑인지 알 수 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팀이 이런 실험을 했다.

커플을 모아 놓고, fMRI 기계에 들어가게 한 후,

제시한 주제로 대화를 시키는 실험이었다.

'점심 뭐 먹을까'에 대해 대화하게 하거나

'최근 같이 본 영화'에 대해 대화하게 하거나

'같이 같었던 여행이나, 데이트'에 대해 대화하게 하거나

'서로의 어린 시절'에 대해 대화하게 한 것이다.

물론 대화가 일상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은 아니었다.

화자와 청자의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담당했다.

남자가 화자일 때는 여자가 청자,

여자가 화자일 때는 남자가 청자였다.

한 사람이 말할 때, 다른 쪽은 끼어들 수 없고, 듣기만 해야 했다.

화자 역할을 맡은 사람은 10분 정도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화자의 말과 청자의 듣기가

진행됨에 따라 두 사람의 뇌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촬영하였다.


수백 커플에 대해 이런 뇌 영상 촬영 데이터를 수집한 연구자들은

커플별 뇌 영상을 분석한 후, 몇 가지 특징을 분류해냈다.

그리고 3개월 후,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커플과

헤어진 커플을 조사해보았다.

과연 연구진이 확인한 뇌촬영 영상의 커플별 특성이

관계의 유지와 헤어짐을 예측하는데 유효했을까?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결론부터 빨리 말씀해 드리겠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커플별 뇌촬영 영상의 중요한 특성 하나가

어떤 커플이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지,

아니면 곧 헤어질지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무슨 특징을 발견한 걸까?

바로 '신경회로 커플링(neural coupling)'이라는 특징이었다.

우리 말로는 '신경회로 일치'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자세히 설명해드리도록 하겠다.

화자 역할을 맡은 존(John)은 청자 역할을 맡은 애인 제인(Jane)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존(John)의 기억 회로와 감정 회로가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반복하면서

출렁거려기 시작했다.

이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를 듣는 제인의 뇌가 처음에는 별반응이 없더니,

어느 순간부터 존의 기억 및 감정회로

활성화와 비활성화 패턴을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에게 특정 패턴의 활성화가 나타난 이후,

곧바로 제인에게 그러한 활성화가 나타나는 식이었다.

신경회로의 동기화(neural synchronization)라고 불리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그 다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제인의 신경회로 활성화-비활성화 패턴이

존보다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인이 말하고 있는 화자보다 먼저 반응을 해버리는 것이다.

마치 '나는 존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무엇을 느낄지 알고 있어'라는듯이,

제인의 활성화-비활성화 패턴이 먼저 나타나고,

이것과 동일한 두뇌 반응 패턴이 존에게서 나타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신경회로의 선행반응(Neural circuit proactive response)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애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신경회로가 화자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신경회로의 선행반응이 나타나는 커플은 3개월 후에도

서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예상하겠지만, 이런 신경회로의 선행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커플은

3개월 후에 헤어져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3개월 후에 헤어진 커플은

신경회로 선행반응이 나타나기 전에 있어야 할 신경회로 동기화 조차 없었다.

마치 상대방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화자의 두뇌 반응 패턴과 청자의 두뇌 반응 패턴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뇌는 못속인다. 이렇게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서로의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으니,

관계가 냉랭할 수 밖에.


이후 연구자들은 커플의 신경회로 동기화와 신경회로의 선행반응을 하나로 묶어

뉴럴 커플링, 신경회로 커플링이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사회적 관계에서만 커플이 아니라,

뇌의 신경회로적 반응에서도 커플인 사람은 진정한 커플이고,

오래가는 커플이다.

만약 두 사람의 사회적 관계는 커플이지만,

뇌의 신경적 반응에서 커플이 아니었다면(동기화와 선행반응이 없다면),

두 사람은 일시적 커플이고, 곧 헤어질 커플이다.


물론 이걸 꼭 뇌를 촬영해봐야 아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고,

리액션 해주고, 맞장구 쳐주는 커플은 오래간다.

뇌 촬영을 해보지 않았지만, 이들의 뇌는 커플링 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척하면 척이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키보드 키는 소리가 들리거나,

문자 치는 소리가 들릴 때처럼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 커플은

뇌가 차갑게 식어서 이미 헤어진 상태다.

그리고 실제로 헤어진다.


이혼하는 수많은 커플들을 보라.

'성격차이'라는 것은 결국 '이심전심'이 안 된다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 알아' 혹은 '네가 무슨 말 할지 알아'라는 것이 안된다.

두뇌 반응이 커플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럼 이혼한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때를 생각해보라.

그 친구들과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지지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뇌는 지금 다 커플이 되어 있다.

그러나 말 안통하는 지인들이 모여 답답한 대화를 이어가거나,

답답한 직장 동료들과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사람들의 뇌는 지금 다 각자 놀고 있다. 커플이 아닌 것이다.


뉴럴 커플링의 뇌과학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는 것 같다.

건강하게 오래가는 인간관계는 결국 서로의 뇌를 조율해가는 과정이라는 것.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래도록 각자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고, 맞장구를 쳐주면서

맞춰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런 노력에 의해 오래도록 달랐던

두 사람의 뇌가 서서히 조율되기 시작하고,

함께 움직이며, 심지어 상대방보다 앞서 움직이게 되고,

이때서야 진정한 커플이 된다는 것.

잠시 서로 좋았지만,

결국 헤어지는 커플은 결국 이런 조율에 실패한 것이라는 것.

30년 간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의 뇌를 조율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서로에 대한 의도적 관심과 노력, 예의와 존중의 지속으로만

이룰 수 있는 뉴럴 커플링.

진정한 사랑의 시작은 뉴럴 커플링을 이룬 다음부터 아닐까.


*참고문헌

Stephens, G. J., Silbert, L. J., & Hasson, U. (2010). Speaker–listener neural coupling underlies successful communic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7(32), 14425-14430.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OPPO Find X5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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