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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l 03. 2024

민심이 기다려줄 때와
기다려주지 않을 때

정치적 형세를 좌우하는 감정 전염의 두 가지 얼굴

중국 후한 말기, 삼국시대 최후의 승자, 사마의.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다.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한 엄청난 노력.

신중한 성품과 극도의 인내심.

겸손함과 강인함의 조화.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연기력과 임기응변.

난세의 종지부를 찍는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걸 다 보여준 인물이다.


이런 사마의를 다룬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마의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애쓴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실제로 사마의가 했을 법한 명대사들이 즐비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 잡은 대사를 하나 공유하고 싶다.

이 대사는 당시 위나라 황제 조비의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하던 사마의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며

위황제 조비의 미움을 산 후,

관직을 잃고, 낙향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자신을 따르던 문생들에게 한 말이다.


너희들은 항상 이 두 가지를 기억하거라.
이익과 형세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익은 국가의 이익이며,
형세는 재야의 민심이다.
이 두 가지를 명심하면 형통할 것이다.


조비가 사마의를 가리켜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인물이고,

빈틈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얼마나 도덕적·윤리적으로 깨어있었던 사람인지가

이 말 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먼저 정치인으로서, 공직에 있는 자로서 따져야 하는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이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어디 사마의같은 국회의원 없을까.

자신의 사리사욕이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속상하다.

정치인이 따져야 하는 이익은 국가의 이익,

그중에서도 국가의 장기적 이익이다.


민주 국가에서 국가의 장기적 이익은

곧 국민의 장기적 이익이자,

동료 시민 사회의 장기적 이익이어야 한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국회의원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기 보다는

국민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어야 하고,

특정 집단에게만 이익을 주고,

이익을 자손대대로 유지하게 하는는 법을 만들기보다

대다수의 동료 시민에게 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최근에 피해를 봤다고,

그들에게만 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고,

또 누군가 옛날에 피해를 봤다고,

그들에게만 혜택과 특권을 주는

또 다른 법을 만드는 식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국회의원 개인에게만 이익이 되는 법이 있을 때는

폐지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의 월급 자체가 특권 수준이라면,

특권이 되지 않게 낮춰야 한다.


다음으로 형세가 재야의 민심이라 함은

동료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지, 반대를 받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료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일은

아무리 강력한 권력자라도

그 시민 사회의 지지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동료 시민들의 반대를 받는 일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쥔 자가 재야의 민심이 반대하는 일을 하면,

민주사회에서는 이미 권력을 잃은 것과 같다.


현대사회에서 여론조사를 많이 하는데,

여론조사가 어떤 정책이나 제안에 대한

민심의 향방에 대한 것이기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인기투표인 경우가 많아서 아쉽다.

재야의 민심이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인기투표에 반영될 수도 있지만,

더 의미있는 여론 조사가 되려면,

정치인이나 관료의 정책이나 제안,

주장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를 확인하는

여론 조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익과 형세는 서로 연결된다.

동료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과 제안은

재야의 민심을 그 정책과 제안에 대한 '지지'로 기울게 하고,

정치적 권력은 바로 그 지지에서 기초하여 탄생한다.

그러나 동료 시민에게 손해가 되는 정책과 제안은

재야의 민심을 그 정책과 제안에 대한 '반대'로 기울게 하고,

이는 정치권 권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 정책적 제안,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해지는 세상에서

재야의 민심, 즉 형세는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말 한 번 잘못해서 대중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렇게 감정이 상한 사람들이 서로 댓글을 올리고,

그 상한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부정적 감정이 전염되고,

'반대'의 형세가 만들어 진다.

그러나 말 한 번 잘해서 대중에게 만족을 주면,

그렇게 행복해진 사람들이 서로 댓글을 올리고,

그 행복한 감정을 공유하면서

빠르게 '지지'의 형세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감정 전염이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어떤 사안이 국민적 이익인지 손해인지에 대해

그래서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를 어느 때보다 빠르게 공유하고,

전염시킬 수 있는 세상.

새로운 정책이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

한참 두고 본 후에 재야의 민심이 변하는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이 반영되기도 전에

그 정책에 대한 예상과 예측, 인터넷을 통한 감정 공유로

재야의 민심이 변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형세, 재야의 민심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긍정적 감정 전염을 불러올 수 있는 작전을 짜야 한다.

문화 유전자 밈(meme)이 대중의 감정을 타고 퍼져나가듯

정책에 대한 긍정 유전자가 동료 시민의 감정을 타고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

미소 짓게 하는 정책, 인물, 주장, 제안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가야 한다.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책, 인물, 주장, 제안이

퍼져나가면 끝이다.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이 퍼져 나가면,

대중은 다소 힘들더라도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겠지만,

인상 쓰게 만드는 것들이 퍼져 나가면,

대중은 참지 않고, 지지를 금세 철회한다.


맛집이 입소문을 타고 줄서서 먹는 식당이 되는 과정을 보라.

표면적으로는 음식의 맛에 대한 소문이 난 것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그 식당에 대한 감정이 대중들에게 전염되어 나갔고,

그 감정의 물결이 줄서서 먹는 식당.

오래 기다리는 것을 감수할 마음을 먹고

오게 만드는 식당이 되게 한 것이다.


긍정적 감정의 전염이라는 것이 이렇다.

긍정적 감정이 전염된 동료 시민 사회는

줄서서 먹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인내해줄 수 있다.

어떤 정책, 제안, 주장에 대해

기다려줄 수 있는 힘이 긍정적 감정 전염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의 전염에 대해서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맛도 없는 식당이 음식도 늦게 나온다면,

누가 기다려 주겠는가.


긍정적 감정 전염은 국민의 인내심을 충전시키고,

부정적 감정 전염은 국민의 인내심을 고갈시킨다.


그리고 재야의 민심,

곧 형세는 국민의 인내심을 더 많이 충전시킨 쪽으로 갈 것이다.


*참고문헌

Elfenbein, H. A. (2014). The many faces of emotional contagion: An affective process theory of affective linkage. Organizational Psychology Review4(4), 326-362.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Jacek Dy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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