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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ind Craft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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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ul 01. 2020

그거 시험 보는 맥락에 있는 거니?

정보는 맥락과 함께 기억된다

시험 기간에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가면 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카페에서 시험 공부를 하는 학생들 말이다. 처음에는 대학생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도 카페에 나타났다(교복을 입었기에 단숨에 알 수 있다!).


혼자서 공부하는 학생도 있고, 친구와 함께 온 학생도 있다. 친구와 함께 온 학생들은 카페 테이블에 책과 노트가 올라와 있지만, 대부분 책과 노트를 보지 않는다. 친구와 이야기 하기 바쁘다. 이들은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하는 척을 하러 온 것이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다른 손님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공부가 목적이 아니기에 오늘 이야기에서는 여기까지만 등장해 주셔야 겠다.


나는 카페에 진짜 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에게 더 관심이 있다. 이 분들을 관찰하다보면, 굉장한 유사성이 있어서 흥미롭다. 공부하는 콘텐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는 자세, 태도, 공부할 때 사용하는 도구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일단 이 분들은 이어폰을 끼고 있다.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소음이 없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왜 카페를 공부 장소로 선택했는지 의문이 들지만, 아무튼 소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곳에 와서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있다.


이 분들은 대개 음악을 듣고 계시다. 그것도 가사가 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소음 때문에 볼륨을 키우셔서 밖에 까지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밖에 까지 음악이 들릴 정도의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면, 청각에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볼륨을 줄이셔야 한다.


이 분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대부분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고 계시다. 스마트폰은 음악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기에,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있다보면, 여러가지를 병행하게 된다. 어떤 분은 갑자기 어떤 메시지가 왔는지,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다른 분은 갑자기 보고 싶은 영상이 생겼는지, 음악을 멈추고 영상을 본다. 또 다른 분은 오늘 보지 못한 웹툰이 생각 났는지, 웹툰을 보고 있다. 틈틈이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들어 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퍼득 정신을 차려서 공부 모드로 돌아오지만, 갑자기 또 주의를 빼앗겨 스마트폰을 본다. 공부한다고 앉아 있는 시간 내내 이런 일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공부를 좀 하는 가 싶더니, 화장실도 한 번 갔다 오면서 또 주의를 빼앗긴다. 그것도 아니면,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 통화를 한다. 더 재밌는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시다가, 음악이 너무 좋았는지, 자기도 모르게 음악을 흥얼거리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공부하는 척을 하면서 사실은 음악 감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소음 차단용으로 음악을 사용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좋다. 백번 양보에서 공부를 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치자. 그럼 그 공부 왜 하고 있는 건가? '시험 잘 보려고'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럼 하나만 더 묻자. 그렇게 해서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인지심리학자의 대답을 알려 주겠다. 그렇게 해서는 시험을 잘 못보게 된다. 시험을 못보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계속 주의가 분산된다. 공부라는 것은 장시간 주의를 한 가지 과업에 유지해야 효과가 있는 것인데, 음악, SNS, 라디오 사연, 웹툰, 전화벨 소리, 카페 자체에 있는 소음, 주변의 말소리, 다른 사람이 통화하는 소리,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 웃음 소리, 옆 사람이 키보드 두르리는 소리 등등 카페에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공부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니라, 최악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둘째, 우리 인간은 어떤 정보를 저장할 때, 그 정보가 있었던 맥락과 함께 저장한다. 내가 카페에서 공부를 하면서 정보를 내 뇌에 저장하는 일을 했다면, 카페라는 특수한 상황과 함께 저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맥락과 정보가 함께 저장된다는 것은 기억의 사용 혹은 지식의 사용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부를 했던 그 맥락에 가면 공부했던 정보가 잘 생각이 나지만, 공부를 했던 그 맥락에서 벗어나면, 공부했던 정보가 잘 생각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1].


쉽게 말해 카페에서 공부했던 정보는 카페에서는 생각이 잘 날 것이다. 그런데, 강의실에서는 생각이 잘 안 날 가능성이 높다. 왜냐고? 카페라는 맥락과 강의실은 천지 차이기 때문이다. 소음도 없고,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못하고, 음악도 못듣고, SNS도 못보고, 전화벨 소리도 없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분위기도 너무 다른다. 따뜻한 조명과 가구 위주로 되어 있는 카페와 다르게, 강의실은 차갑다. 조명도 차갑고, 책상도 차갑기 마련이다. 이 모든 차이들은 카페에서 공부했던 것들을 생각나지 않게 막는 요인이 된다.


셋째, 우리 뇌는 생소한 환경에 직면하면,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기 까지 다른 것에 좀 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모든 동작을 멈추고, 생소한 환경에 무엇이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카페에서 공부한 사람에게 카페는 익숙한 곳이기에 우리 뇌는 더 이상 적응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카페에서 공부한 사람에게 강의실은 매우 생소한 곳이다. 카페에서 공부한 사람에게 공무원 시험장은 매우 생소한 곳이다. 카페에서 공부한 사람에게 회사 면접장은 매우 생소한 곳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한 맥락과 전혀 다른 곳을 마주한 우리 뇌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적응을 위한 탐색을 시작한다. 카페에서 공부한 사람이 당장 시험을 보는데 필요한 정보를 인출하는 것조차 멈추고, 탐색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장에서 그렇게 기억이 안나서 결국 답을 쓰지 못했던 것이 시험 끝나고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카페에 갔을 때 생각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공부하는 맥락은 어떠한가?

당신은 공부하는 맥락과 시험 보는 맥락을 일치시키고 있는가?

당신이 공부할 때 있는 것들이 시험 볼 때도 있는 것들인가?


공부할 장소를 선택하거나 공부할 만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시라.


'그거 시험보는 맥락에 있는 거니?'


[1] Godden, D. R., & Baddeley, A. D. (1975). Context‐dependent memory in two natural environments: On land and underwater.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 66(3), 32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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