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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13. 2020

학점

나는 프로인가?

회사에 지원할 때 우리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쓴다. 그리고 이력서에는 평균평점(학점의 평균)을 기재한다. 평균평점(GPA)이 뭘까? 간혹 평균평점이 전공지식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학부에서 배우는 것들이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거나, 학부를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어느 회사에 어느 일을 맡더라도 모든 일을 척척 잘하게 될 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꿈깨라. 정말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라. OO원론, OO개론이라는 수업에서, 교과서의 처음부터 끝을 한 학기 안에 완전히 마스터하는 수업이 있던가? 적어도 내 경험에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 학기라는 짧은 시간으로는 전공지식 전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교과서에 있는 지식은 검증된 지식이며, 검증된 지식은 업데이트가 느리다. 즉 교과서에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현재 업계에서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이론들이 빠져 있기 마련이다.


문제기반 학습, 과제기반 학습, 토의토론으로 수업방식을 바꾼다고, 전공지식의 질이 월등히 좋아질까? 글쎄. 인터넷에서 누구에게나 공개된 자료를 검색해서 들고 오는 문제기반 학습, 다른 사람의 생각을 베껴오는 과제기반 학습, 토의토론은 오히려 수업의 질을 낮추는 요인이지 높이는 요인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외적 도구를 바꾼다고, 과연 엄청난 전공지식을 습득하게 될까?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 방법을 혁신한다고, 현업에서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사람이 혁신되지 않았는데, 방법이 혁신되어 봐야 좋은 결과를 맺기 어려워 보인다. 아무튼 이러한 해소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진 학부 수업을 듣고, 획득한 학점이 전문지식 수준일리 없다. A받은 학생과 B받은 학생 사이의 전문지식에 진정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학점은 뭘까? 도대체 왜 평균평점을 쓰라는 걸까? 그건 결국 그 사람의 성실함을 측정하기 위함이다. A+를 받은 사람과 B0를 받은 사람의 진정한 차이는 전공지식이라기 보다 성실함이다. A+ 받은 사람의 자기 관리가 B0 받은 사람의 자기 관리보다 더 나았음을 보여준다. A+ 받은 사람은 B0 받은 사람보다 교수자의 공지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과제를 제때 제출하고, 교수자가 해보라고 한 것을 하나라도 더 성실하게 수행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애매 모호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교수자에게 하나라도 더 질문한다.


또 출석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대학교의 졸업생들에게 A+은 완벽한 출석을 상징한다. 완벽한 출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지각, 결석, 조퇴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프지 말아야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삶이 단순하다. A+받는 사람들은 루틴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매일매일 의식처럼 행하는 리루얼(Ritual)이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학점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심지어 학점이 A인데, 사회활동 경력도 있다면? 즉 학점이 A인데, 알바도 열심히 해서 부모님들께 용돈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부모님에게 명절 때 용돈을 드리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믿음이 간다.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 도대체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하기에 학점도 A를 유지하면서, 틈틈이 알바까지 했을까? 이 사람은 그 삶 자체가 이미 프로다. 회사에 다녀서 프로가 아니라, 이미 프로다. 이런 프로들이 회사에 가고, 공무원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취업하면 프로가 되겠다고 하지 말자. 회사는 이미 프로인 사람을 뽑고 싶어한다. 그리고 학점은 당신의 삶이 프로였는지, 아마추어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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