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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Dec 16. 2020

스크립트와 창의성

인생의 대본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2막 7장에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


아침이 오고, 저녁이 되는 것은 마치 무대가 열리고 닫히는 것과 같다. 남자와 여자가 자신의 삶을 영역에서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휴식을 취하는 것 등은 연극을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연극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계속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간 동안 배역은 여러번 바뀐다. 드라마, 뮤지컬, 영화, 연극의 배우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 삶 자체가 연극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배우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과연 뭘까? 훌륭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요소 중에 딱 하나만 뽑으라고 하면 무엇을 뽑아야 할까?


최첨단 음향시설과 조명시설?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 최고의 배경음악 작곡가? 최고의 무대 건축가? 글쎄...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이런 것이 없어도 다 했었다. 우리나라의 마당극도 이런 것 없이도 다 했다. 쉽게 말해 이런 환경적인 요소는 연극의 본질이 아니고, 훌륭한 배우에게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최고의 연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훌륭한 대본'이다. 대본, 즉 스크립트(Script)가 훌륭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요소가 좋아도 소용이 없다. 인기 있는 드라마, 뮤지컬, 영화, 연극을 보라, 그 모든 것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바로 작가의 대본이다. 인기 있는 만화를 보라. 그 만화가가 그림의 영향력이 더 클것 같은가? 대본을 이끌어나는 능력의 영향이 더 클것 같은가? 당연히 후자다. 아무리 그림 잘그려도 스토리를 이끌어 가지 못하면, 즉 대본이 재미 없으면 있던 인기도 사라진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연극의 연속이라면, 당신이 그 무엇보다 우선 순위를 두고 갖춰야 할 것은 환경적 요소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본질이 아니다. 당신이 정말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고, 다듬고, 갱신하고, 필요하면 새로 써야 할 것은 바로 당신 인생의 대본, 곧 스크립트다.


당신은 인생의 스크립트가 있는가? 대본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스크립트가 몇 개나 있는가? 단 하나라고? 단 하나의 스크립트를 가지고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이라는 무대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스크립트라고 하니까, 오늘 하루 계획을 세우는 것?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것? 이런 것이 스크립트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런 것은 스크립트 중 극히 일부일 뿐이고, 진정한 스크립트가 아니다. 진짜 스크립트는


-운전하다가 자동차가 고장나면, 어떻게 대처할까?

-스파게티를 만드는 순서는 어떻게 될까?

-행정처리를 하는 순서는 어떻게 될까?

-은행에서 대출 받는 순서는 어떻게 될까?

-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절차는 어떻게 될까?

-회의를 원활하게 진행하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

-매일 타던 전철이 고장나면, 회사에 어떻게 갈까?


이런 것이다.


어디에 가면 무엇을 구할 수 있는지 아는 것,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는 플랜B가 있는 것이 스크립트를 가졌다는  것의 진짜 의미다. 당신은 과연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본이 준비되어 있는가?


물론 필요한 모든 대본을 준비할 수는 없다. 이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준비할 수는 있다. 어떻게 하냐고? 정말 모르는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 좋다 그럼 내가 다시 상기시켜 주겠다. 불편한 진실에 직면해 보자.


스크립트를 최대한 많이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혼합해서 사용해야 한다. 첫째, 독서다. 책 봐야 한다. 어려서 부터 책이 간접 경험임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겠지만, 이제는 알아야 한다.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풍부한 스크립트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또 내가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를 대신 경험한 사람을 보면서 내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여 나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렇게 좋은 독서, 인생에 풍부한 스크립트를 제공하는 독서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 이다.


둘째, 상상이다. 책을 보면서 상상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가 경험한 상황 중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가? 있다면 내가 그때는 스크립트가 없어서 미숙하게 대처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독서와 상상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크립트가 준비되고, 우리의 기억 시스템 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스크립트가 많은 사람에게 일어날 좋은 일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들은 일단 어떤 일에 대한 의사결정이 빠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 열 걸음 앞서 나가고 있을 것이다. 스크립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사건, 혹은 약간 다르지만, 응용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대처가 빠른 것이다. 또 스크립트가 많은 사람은 새롭게 직면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스크립트를 바꾸거나, 새롭게 스크립트를 창조하는 일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기존에 스크립트가 많기 때문에 기존 대본들에서 필요한 부분들만 잘라내기 하고, 다시 배열하거나, 섞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크립트 재배열과 섞기가 뭔지 아는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창의성이다. 창의성이 멀리 달나라에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모든 배우가 나사 직원일 필요는 없고, 스페이스X 직원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내가 사는 공간에서 연극을 하면 되고, 그에 필요한 대본이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 대본은 많을 수록 좋다. 기존에 있었던 대본을 재사용하게 되는 일은 그렇게 하면 되고, 새롭게 재배열 하거나 다시 만드는 것이 필요할 때는 유연한 마음 가짐으로 그렇게 하면 되니까.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이렇게 부를 것이다.


"저 친구, 참 일을 잘 해. 저 친구 참 창의적이야."


이 말을 들은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냥 스크립트가 많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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